정치 외교/통일

[북, 고위급회담 일방 연기] 北, 인권문제 끼어들자 급브레이크.. ‘文의 중재력’ 시험대

김현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5.16 17:18

수정 2018.05.16 21:48

북 속내는 ‘비핵화=체제보장’.. 북 "일방적 핵포기만 강요"
美 강경파 다른의제 지적하자 북미회담 무산 거론하며 반기
판 깨기보다 압박용에 무게.. 강경화-폼페이오 라인 가동
외교라인 선제 대응 나섰지만 풍계리 개방 취소 가능성도
‘맥스선더’ 한·미 연합훈련 계속하는 전투기 북한이 한·미 공군의 대규모 연합공중훈련인 '맥스선더'를 이유로 16일로 예정됐던 남북고위급회담을 전격 취소한 가운데 광주 공군 제1전투비행단 활주로에서 전투기가 이륙하고 있다. 연합뉴스
‘맥스선더’ 한·미 연합훈련 계속하는 전투기 북한이 한·미 공군의 대규모 연합공중훈련인 '맥스선더'를 이유로 16일로 예정됐던 남북고위급회담을 전격 취소한 가운데 광주 공군 제1전투비행단 활주로에서 전투기가 이륙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의 예상치 못한 반격에 한·미 당국이 허를 찔렸다. 오는 22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릴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정상회담에선 북·미 회담의 의제와 전략에 대한 큰 틀에서의 조율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앞서 청와대와 백악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 송영무 국방부 장관,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 등 양국의 외교안보 플레이어들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비핵화 협상의 전열을 가다듬는 모양새다. '북한 비핵화와 체제 보장' 의제 외에 인권, 생화학무기 대량살상무기 등 중구난방식으로 전선을 확대한 미국 대북 강경파들의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일각에선 청와대가 국방부의 한·미 군사훈련에 대한 컨트롤을 제대로 하지 못해 북측에 '쓸데없는 구실'만 제공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비핵화·체제보장에만 주력해야"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16일 담화를 통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볼턴을 비롯한 백악관과 국무성의 고위관리들은 '선핵포기, 후보상' 방식을 내돌리면서 그 무슨 리비아 핵포기 방식이니,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니, '핵·미사일·생화학무기의 완전 폐기'니 하는 주장들을 거리낌 없이 쏟아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미국이 우리가 핵을 포기하면 경제적 보상과 혜택을 주겠다고 떠들고 있는데 우리는 언제 한번 미국에 기대를 걸고 경제건설을 해본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런 거래를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덧붙이며 북·미 정상회담까지도 재고려하겠다고 나섰다.

이는 볼턴 보좌관이 리비아식 해법과 카자흐스탄 해법 등 북한 비핵화 방식에 대해 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개했던 내용 등을 집중적으로 꼬집은 것이다. 이 같은 북한의 의도에 대해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해달라는 '무언의 압박'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특히 볼턴 보좌관 등 미국 강경파들이 북·미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인 '북한의 비핵화와 체제보장' 외에 다른 인권 문제와 주한미군 문제를 거론하는 등 대북 강경발언을 쏟아내고 있어 북한의 심기를 건드렸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중국 다롄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미국에 대한 의견을 전달했고, 이후 시 주석과 트럼프 대통령의 전화통화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의견이 전달됐다"며 "이번에는 문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의견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할 차례"라고 설명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 연구위원은 "미국 강경파들의 여론에 대해 한국이 외교적 대응도 하지 않는다는 점에 대해 항의성 차원으로 풀이된다"며 "인권 문제 등이 북·미 정상회담 의제로 끼워넣기식으로 언급되는 점에 대해 자칫 국가모독으로 받아들여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청와대와 국방부가 한·미 군사훈련과 일부 강경 여론에 대한 조절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만만찮다. 익명을 요구한 한 소식통은 "역대 최대급 훈련이라는 것은 북한에서도 숙지하고 있지만 8개 폭격기를 동원하는 등 훈련 규모를 확대해서 공개하는 것은 불편한 구실만 북한에 제공한 것"이라며 "국방부도 무슨 생각으로 이 같은 훈련 확대를 진행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이를 청와대에서 컨트롤도 못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외교라인 선제적 대응 나서

한·미 외교라인도 선제적 대응에 총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이미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요청으로 강 장관도 전화통화를 통해 이날 우리측 입장을 설명했다. 백악관도 세라 허커비 샌더스 대변인이 "북한이 밝힌 내용을 별도로 살펴볼 것"이라고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북한이 한·미 연합공중훈련(맥스선더)을 비난하며 이날로 예정된 남북 고위급회담의 무기한 연기를 일방 통보한 점에 비춰 미군의 전략폭격기 B-52를 전개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런 가운데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는 이날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을 만나 내일 미군 전략폭격기 B-52를 한반도에 전개하지 못하도록 조치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송 장관은 이날 문 특보와의 오찬을 가졌으며, 이 자리에서 맥스선더 훈련은 전투조종사 기량향상을 위한 훈련이기 때문에 B-52는 (원래)포함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설명했다"고 밝혔다.
북한의 반발로 B-52를 전개하지 못하게 한 건 아니라는 얘기다.

한편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따라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의식도 취소될 가능성이 제기됐다.
홍 연구위원은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의식은 의무적이 아니라 북한이 선의적 차원으로 진행하겠다고 한 만큼 한국과 미국 정부의 반응을 보면서 취소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maru13@fnnews.com 김현희 문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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