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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트럼프의 한반도 리얼리티 쇼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5.11 17:02

수정 2018.05.11 17:02

[월드리포트] 트럼프의 한반도 리얼리티 쇼

2016년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가 도널드 트럼프의 예상을 뒤엎은 승리로 끝난 뒤 주변 지인들(한국계 미국인)과 대통령 트럼프를 소재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트럼프의 당선은 미국의 수치라고 탄식하는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트럼프의 승리에 환호하는 한인도 적지 않았다. (신뢰할 만한 통계를 제시할 수는 없으나 트럼프를 지지하는 한인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당시 기자는 트럼프가 국정 운영을 잘할지 못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미국과 국제사회에 많은 변화가 예상되며 재미 있는 사건을 자주 목격하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트럼프 취임 후 1년4개월 정도 지난 지금 대통령으로서 트럼프를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극과 극이다. 각자의 성향과 처한 입장에 따라 트럼프에 대한 평가도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정치를 리얼리티 쇼로 만들었다는 비난이 나오는 반면 그의 유머 감각을 즐긴다는 미국인도 상당수다. 하지만 트럼프로 인해 미국과 국제사회가 많은 변화를 겪었다는 점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는 것 같다. 트럼프는 세금인하를 골자로 하는 세제개혁과 이민정책 강화 등 국내 정책뿐 아니라 이란 핵협정과 국제기후협정 탈퇴 등 국제적으로도 숱한 논란을 불러일으킨 정책들을 밀어붙였다. 텔아비브에 있던 이스라엘 주재 미국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겨 내주 공식 이전행사를 갖기로 한 것도 트럼프가 대통령이기에 가능한 변화 중 하나다. 물론 이 같은 변화들이 바람직한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정답은 없다.

한국인들이 트럼프 시대에 목격하고 있는 가장 흥미로운 이벤트라면 아무래도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일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와 경제협력을 논의한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데 이어 내달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개최가 공식 발표됐다.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 결과에 따라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북·미 수교, 북한 개방 등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엄청난 변화들이 뒤따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 같은 변화의 흐름을 트럼프 혼자 만들어낸 것은 아니지만 트럼프가 지금 백악관의 주인이기에 가능했다는 것만큼은 부인하기 어렵다.

한국 내에서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북·미 정상회담을 너무 낙관적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린다. 과거 북한이 보여준 행태를 기억할 때 너무나 당연한 경계심이다. 현실적으로 트럼프 행정부가 바라는 북한의 완전하고 영구적인 비핵화는 불가능하다고 경고하는 전문가도 많다. 트럼프가 2018년 중간선거와 2020년 대선을 염두에 두고 너무 성급하게 접근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렇기는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트럼프가 북·미 회담을 통해 만들어낼 한반도의 변화에 큰 기대를 걸고 싶다. 완전 비현실적 꿈은 아니라고 본다. 최근 북한의 움직임도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전향적이고 파격적이다.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없는 소련과 미국이 세계의 패권을 놓고 경쟁을 벌였던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동서냉전 종식과 핵무기 감축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1985년 3월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 취임하면서 세계 질서는 지각변동을 경험했다. 핵전쟁과 환경오염 등 세계가 당면한 심각한 위협으로부터 인류를 보호하기 위한 새로운 사고와 자세가 요구된다는 고르바초프의 철학과 정책은 냉전을 끝냈고, 소련에서 공산당 일당 지배 체제는 막을 내렸다.

트럼프는 리얼리티 쇼의 달인이다. 북·미 정상회담 준비 과정 중에도 다분히 리얼리티 쇼를 연상시키는 이벤트들이 자주 연출됐다. 북한 김정은도 지금 세계를 상대로 진행되는 트럼프쇼를 즐기고 있는 것 같다.
그 나름대로 공동 진행자 혹은 메인 게스트로서 자질도 엿보인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어떤 결과가 도출될지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트럼프와 김정은 모두 빈손으로 귀국길에 오르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트럼프의 역사적인 한반도 리얼리티 쇼, 그 결말이 어떻든 정말 흥미 만점의 이벤트다.

jdsmh@fnnews.com 장도선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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