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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영 칼럼] 드루킹과 저널리즘의 위기

구본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5.09 17:11

수정 2018.05.09 18:03

포털 댓글에 휘둘려서는 언론산업의 미래 안보여
디지털 민주주의도 한계
[구본영 칼럼] 드루킹과 저널리즘의 위기

'드루킹 재판'이 진행되면서 한국 저널리즘의 민낯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댓글 민주주의'란 이름의 부실한 여론 형성 메커니즘에서부터 황폐해진 언론산업 현주소에 이르기까지.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젖힌 형국이다.

김모씨 등 전 더불어민주당 당원들의 댓글 조작과 청와대 인사청탁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수백개의 ID(사용자 이름)로 포털에서 댓글 작성과 추천.공감수 부풀리기를 하다 꼬리를 밟히면서다. 더욱이 수사 과정에서 지난해 대선 전부터 댓글 조작활동을 한 행적도 포착됐다. 2013년 대선에서 국정원 댓글부대의 일탈에 이어 또다시 디지털 민주주의의 장래에 경종을 울린 꼴이다.


빙산의 일각인 양 드러난 드루킹 일당의 활약상은 놀랍다. 올 1월 초 이틀간 댓글 2만개를 조작하고, 추천 수를 210만회를 늘렸단다. 매크로(동일작업 반복프로그램)를 돌려 베스트댓글을 조작하는 일쯤은 오프라인에서 책 사재기로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내는 것보다 훨씬 손쉬움을 보여줬다. 이번에 '댓글 저널리즘'의 폐해가 확실히 드러났다면 이들의 역설적 공로다. 인터넷상의 쌍방향 소통으로 숙의민주주의를 고양할 것이라는 믿음이 환상에 불과함을 입증했으니….

드루킹 사건은 이중적 성격을 띤다. 첫째, 김씨 일당이 포털을 여론 조작의 숙주로 삼아 악행을 저지른 점이다. 이로 인해 업무방해를 당했으니 포털도 피해자다. 둘째, 이들이 네이버 등 포털이 뉴스 유통을 독점하고 있는 언론 생태계의 맹점을 파고든 점이다. 이 경우엔 포털도 공범 격이다. 평소 포털이 신문이나 방송 등 올드미디어들로 하여금 뉴스 클릭수에만 목을 매도록 조장한 '원죄'가 어찌 가볍겠나.

정보통신기술(ICT) 발달로 '민주주의 3.0' 시대가 입길에 오른다. 그러나 정보 유통이 빨라지면 사이버 민주주의가 만개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으니 문제다. 더욱이 포털이 독점적 뉴스 유통 플랫폼으로 자리 잡으면서 언론산업이 왜소해지고 있다면? 그 결과 다시 민주적 공론의 장이 협소해지는 악순환이 빚어진다면 심각한 사태다.

그래서 여야를 떠나 제도적 개선책을 내놓고 있는 건 다행이다. 뉴스 플랫폼으로서 포털의 독과점은 완화하고, 책임성은 강화하는 취지의 인링크 금지방안도 그 일환이다. 궁극적으론 구글처럼 국내 포털도 아웃링크로 전환하는 게 맞다고 본다.

그 이전에 개별 언론사들의 발상의 전환도 절실하다. 어떤 식으로든 포털의 종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네이버신문'과 '카카오일보'만 남을 것이라는 자조가 현실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오래전 야마니 사우디아라비아 전 석유상이 그랬던가. "석기시대가 돌이 모자라서 끝난 게 아니다"라고. 종이와 전파는 남아돌아도 신문이나 방송과 같은 올드미디어산업 사양화는 가속화할 수 있다.
종이신문 열독률의 지속적 하락세와 달리 인터넷 접속률과 소셜미디어 이용률은 날로 높아지는 추세 아닌가.

포털이 뉴스 편집.배열권을 무기로 대형 쇼핑몰의 입점권을 개별 언론사들에 선심 쓰듯 나눠주는 상황에 언제까지 안주할 건가. 네이버 등의 댓글에 의존해서는 언론의 공신력 회복도, 매체산업으로서 확실한 수익모델 확보도 언감생심이다. 그런 맥락에서 공신력 있는 댓글을 유도하기 위한 해외 유력지들의 각종 자구책을 참고할 만하다.
특히 작성자에게 사는 지역을 입력하게 하거나, 등급까지 부여하는 뉴욕타임스(NYT)의 신(新)댓글 정책은 좋은 역할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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