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영 칼럼]

북핵, 진실의 순간이 왔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4.25 16:55 수정 : 2018.04.25 16:55

비핵화 없는 평화는 공염불
한.미 간 확고한 북핵 공조로 北 CVID식 비핵화 이끌어야



한반도가 70년 분단사의 큰 변곡점을 맞을 참이다. 27일 남북 정상회담과 6월로 예상되는 미·북 정상회담이 운명의 분수령이다. 일단 따스한 봄기운은 느껴진다. 문재인 대통령이 6.25 종전선언 등 평화 청사진을 펼쳐 보이자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선언으로 화답했으니….

그러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란 결승선은 아직 멀다.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폐기(CVID)'라는 허들부터 넘어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CVID식 비핵화를 하면 밝은 길이 있다"며 연일 북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구슬리고 있지만.

'진실의 순간'이란 마케팅 용어다. 고객이 브랜드에 대한 이미지를 결정하는 15초 내외를 가리킨다. 본래 투우에서 유래했다. 투우는 워낙 잔인하지만, 본고장 스페인에선 흥행을 앞세워 오락성을 극대화한다. 조연 투우사들이 소에게 붉은 천을 흔드는, 긴 실랑이도 실은 관중을 더 흥분시킨다. 소는 색맹이라는 말도 있으니.

그러나 주연 투우사가 나와 소의 심장에 최후의 칼을 찔러 넣는 장면은 다르다. 삶과 죽음이 결판나는, 그 절체절명의 찰나에 '쇼'나 '양념'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이제 북핵 문제가 바로 그런 진실의 순간을 앞두고 있다.

만일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6개월~1년 내 핵 포기를 약속하고 핵사찰을 통해 검증까지 받는 데 동의한다면? 대북제재 해제와 체제보장, 그리고 북이 원한다면 당장 평양 내 미국대사관 개설로도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최상의 시나리오를 북이 외면하면 미국의 더 강력한 제재, 심지어 군사적 조치와 맞닥뜨릴 법하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이 있다. 어쩌면 미·북 간 어정쩡한 타협이 장기적으로 우리에게는 더 나쁜 결과일 수도 있다. 이를테면 북한이 핵동결 카드를 흔들며 예의 살라미 전술을 펼 경우다. 혹여 중간선거를 앞두고 실적이 필요한 트럼프정부가 덜컥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포기 약속만 받고 북한의 단계적 해법에 동의한다면 우리에겐 께름칙하기 짝이 없는 시나리오다.

얼마 전 방한한 프랑스의 세계적 석학 기 소르망 박사는 "미·북 협상이 시작되면서 남북통일은 더 멀어질 것이므로 섣부른 기대를 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제3자인 그가 일부러 '초치는' 소리를 했을 리는 만무하다. 그의 불길한 예언처럼 북핵을 머리에 인 채 분단체제가 장기화한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이 남북 및 미·북 정상회담의 의제로 대두되고 있다. 미국의 전임 오바마정부는 전략적 인내라는 이름으로 손놓고 있다가 북한의 핵능력 고도화를 허용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트럼프정부처럼 담판을 하는 게 낫긴 하다. 2차대전 승리를 이끈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도 "협상이 전쟁보다 낫다"고 했다. 하지만 직전 총리인 네빌 체임벌린은 히틀러의 위장평화 전술에 속아 나치 정권에 전쟁준비 시간을 줬다. 역사는 이를 '체임벌린의 시간'으로 기록하고 있다.

남북 구성원 모두의 안위를 김정은 위원장의 자비에만 맡길 순 없는 노릇이다. 양대 정상회담 이후에도 북한이 핵 보유에 미련을 갖게 해서는 곤란하다. 진정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북한의 비핵화가 전제되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할 때다. 혹여 '체임벌린의 시간'이 이 땅에서 재연되는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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