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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주파수 경매

김성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4.19 17:14

수정 2018.04.19 17:14

1950년대 미국 내무부는 멕시코만 일대 해상유전 시추권을 경매로 내놨다. 일부 정유업체는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써냈다. 2억달러를 주고 따낸 유전을 시추해보니 실제 매장량은 500만달러 규모에 불과했다. 경쟁자는 제쳤지만 손해만 본 셈이다. 이른바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세일러가 1992년 '승자의 저주'라는 책을 출간하면서 이 개념도 널리 퍼졌다.


로마시대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기원전 193년 로마 근위대는 페르티낙스 황제를 살해한 후 황제직을 경매에 내놨다. 디두스 율리아누스라는 귀족이 경합 끝에 황제 자리를 샀다. 그가 내건 금액은 2만5000세스테르티우스. 현재 시가로 약 1조원이다. 율리아누스는 결국 이 돈을 다 갚지 못해 황제 자리를 뺏겼다.

이동통신도 승자의 저주 위험이 큰 업종이다. 한정된 주파수를 각국 정부가 경매에 부쳐서다. 2세대(2G)에서 3세대(3G), 4세대(4G)로 통신망을 개선하려면 주파수 대역을 넓혀야 한다. 2000년 독일 모빌컴은 무려 84억유로(약 11조원)를 내고 3G망 주파수를 샀다. 하지만 경영난에 허덕이다 3년 만에 사업권을 반납했다. 같은 해 영국 브리티시텔레콤(BT)은 영국, 독일 등 주요 지역에서 IMT2000 사업권을 따냈지만 수년간 경영난에 시달렸다.

한국에선 오는 6월 5세대(5G)망 주파수를 놓고 이동통신 3사가 경합을 벌인다. 19일 과학기술정통부에 따르면 3.5㎓와 28㎓ 대역이 경매로 나온다. 이 중 3.5㎓ 대역이 황금주파수로 불린다. 전파도달거리가 길어 망을 전국에 깔기가 수월하다. 10㎒씩 총 28개 블록이 나온다. 통신사들은 얼마나 많은 블록을 확보하느냐가 관건이다. 정부는 이동통신사 간 확보할 수 있는 블록을 최대 12개까지 제한하는 걸 고려 중이다.

2011년 SK텔레콤은 1.8㎓ 대역 20㎒ 폭을 확보하는 데 약 1조원을 쏟아부었다. KT와 83차례 혈투를 벌인 결과다.
과기정통부는 최저경쟁가를 약 3조3000억원(3.5㎓ 2조6544억원, 28㎓ 6216억원)으로 잡았다. 이번에도 통신사들의 부담이 크다.
승자의 저주를 피할 묘안이 절실하다.

ksh@fnnews.com 김성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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