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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 해외 대기획 3탄]정치인·군인들만 든든한 노후…성장 발목잡은 ‘연금 퍼주기’

남건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4.19 17:04

수정 2018.04.19 17:04

[포퓰리즘의 비극 중남미를 가다]브라질 - <3·끝>연금 천국, 경제 지옥
男 55세 임금 70% 연금 수령..정부지출 3분의 1이나 차지, 상위 20%가 연금 35% 독식
대선 후 최대이슈는 연금개혁, 테메르 임기말에 통과 가능성..성공땐 성장률 3%대로 올라
카를로스씨(63)가 지난 3월 8일 브라질 상파울루의 한 공원에서 파이낸셜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태희 기자
카를로스씨(63)가 지난 3월 8일 브라질 상파울루의 한 공원에서 파이낸셜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태희 기자

루이스씨(74)가 지난 3월 7일 브라질 상파울루의 한 공원에서 운동을 하고 있다. 사진=이태희 기자
루이스씨(74)가 지난 3월 7일 브라질 상파울루의 한 공원에서 운동을 하고 있다. 사진=이태희 기자


【 상파울루(브라질)=남건우 이태희 기자】 지난 3월 8일 브라질 상파울루의 한 공원에서 만난 카를로스씨(63)는 정부로부터 연금을 받아 살고 있다. 미혼인 그는 시장 채소가게에서 일하다 은퇴한 지 5년이 넘었다.
카를로스씨는 연금만으로 생활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며 미소 지었다. 여유로운 미소와 달리 카를로스씨의 낡은 티셔츠는 목이 늘어난 채 군데군데 얼룩져 있었다.

빈부격차가 심한 브라질에선 연금도 부익부 빈익빈이다. 소수가 전체 연금액 상당수를 가져가는 동안 다수는 적은 액수만을 받는다. 연금은 브라질 정부 지출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재정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남성은 55세에 퇴직 전 임금의 70%를, 여성은 50세에 퇴직 전 임금의 53%에 해당하는 연금을 받을 수 있다. 미셰우 테메르 브라질 대통령이 연금개혁을 추진하는 이유다. 브라질 경제가 성장하기 위해선 연금 분배 시스템은 물론 전반적 연금개혁을 기필코 이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수가 연금 독식

이날 같은 공원에서 만난 루이스씨(74)는 한달에 5000헤알(약 156만원)을 연금으로 받는다. 그는 엔지니어로 일하다 지난 2013년 은퇴했다. 루이스씨는 "그래도 나 정도면 꽤 높은 연금 수준"이라며 "나보다 적게 받는 사람이 훨씬 많다"고 설명했다. 연금을 많이 받아 먹고사는 데 특별히 어려운 게 없다는 그에게 테메르 대통령의 연금개혁 방안에 대해 물었다. 루이스씨는 "나한테는 영향이 없겠지만 앞으로 받을 사람들은 싫어할 것 같다"고 답했다.

테메르 정부는 연금 혜택을 줄이는 내용을 골자로 연금개혁안을 마련했다. 개혁안에는 연금 수령연령을 기존 55세에서 65세로 늦추는 내용이 담겼다. 또 연금 최소 납부기간도 기존 15년에서 20년으로 늘렸다.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한 궁여지책이지만, 오는 10월 대선을 앞두고 연방의회 표결은 미뤄진 상태다.

연금개혁을 지지하는 재계 사람들은 연금이 소수에 편중되는 현상에 비판적 목소리를 냈다. 토마스 자노토 산업연맹(FIESP) 국제무역팀장은 "브라질에선 3000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연금을 받고 있다"며 "이 중 100만명 정도가 엄청난 액수의 연금을 독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고액연금 수령자 대부분은 정치인, 판사, 군인"이라고 덧붙였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1995년 브라질 국내총생산(GDP)의 4.6%를 차지했던 연금 지출액은 지난 2016년에 8.2%로 2배 가까이 늘었다. 브라질 기초재정수지(국채와 관련된 부분을 뺀 예산)는 지난 2014년부터 4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전체 연금 지출액 중 35%는 수령액 기준 상위 20% 수령자에게 돌아간다. 하위 20% 수령자는 전체 연금 지출액에서 오직 4%만 받고 있다.

■"연금개혁 이뤄지면 3% 성장"

인구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브라질에서 연금개혁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2010년 브라질 전체 인구의 7.6%를 차지하던 65세 이상 인구가 2050년이 되면 38%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 3월 7일 브라질 수도 브라질리아에서 만난 바우질 하우피 브라질 상원의원 역시 올해 대선이 끝나면 연금개혁이 브라질 최대 이슈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우히 상원의원은 "어느 세력이 집권하든 연금개혁 법안은 연방의회에서 반드시 가결돼야 한다"며 "이제는 그러지 않으면 안 될 순간이 왔다"고 강조했다.

그는 테메르 대통령 임기 말에 법안 통과가 이뤄질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하우피 상원의원은 "대선이 끝나고 난 뒤에도 임기가 두 달 정도 남은 테메르 정부에서 연금법이 통과되는 것도 좋은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되면 차기 정부는 연금개혁에 따른 부담을 지지 않아도 된다.

하우피 상원의원은 테메르 정부 경제팀의 성과를 높게 평가했다. 그는 "모든 브라질 경제 문제는 정치에서 비롯된다"며 "이를 잘 알고 있는 테메르 대통령은 엔히키 메이렐리스 재무장관을 중심으로 강력한 경제팀을 구성했다"고 전했다.

이어 하우피 상원의원은 "올해 브라질 경제가 성장세로 돌아선 건 지난해 이뤄진 노동개혁 덕분"이라며 "새로운 노동법은 기업의 노동자 고용문제를 수월하게 만들어줬다"고 말했다.
테메르 정부는 지난해 말 노동법 개정을 통해 노동시간을 늘리고 해고요건을 완화하는 노동개혁을 진행했다.

하우피 상원의원은 연금개혁이 브라질 경제에 긍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는 "올해 브라질 경제성장률은 2.8% 수준으로 예측하고 있다"며 "테메르 대통령이 제시한 연금법이 통과되기만 하면 3% 이상 성장을 이룰 것"이라고 자신했다.

ethica@fnnews.com 남건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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