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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변화 거부하면 진짜 위기 온다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4.12 17:13

수정 2018.04.12 17:13

[여의나루] 변화 거부하면 진짜 위기 온다

우리나라 산업계 곳곳에서 위기의 파열음이 들린다. 조선산업의 위기는 이미 오래된 이야기가 돼버렸고, 자동차산업에서도 심각한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철강, 석유화학 등 이른바 주력산업으로 꼽히던 대표산업들 곳곳에서 순탄치 못한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착시현상'이라고까지 불리는 반도체산업의 호황이 이 모든 위기현상을 가려주고 있어서 그런지 정부나 산업계 모두 그다지 큰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 더 염려스럽다.

이런 한국 산업의 위기를 두고 일부에서는 국제적인 상황변화들-보호주의의 고조, 북핵이라는 지정학적 요소, 4차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급격한 기술변화 등-을 그 원인으로 들면서 이 시기만 지나면 우리 산업이 다시 경쟁력을 회복하면서 잃었던 세계시장에서의 지위도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필자는 우리 산업의 위기는 더 깊은 곳에 있다고 느낀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주력산업은 이미 기술적으로 성숙단계로 들어서 있고 그 경쟁력도 정점에 이르러서 한동안 높은 경쟁력을 이용해 세계시장의 핵심적인 파이를 나눠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성과는 우리 산업에 참여하는 모든 주체들로 하여금 안일함에 빠지도록 만들기에 충분했다. 기업인과 경영자들은 현재의 성과를 지키는 데 급급해왔고, 노동조합도 자신들이 확보한 파이를 더 키우는 데만 열중하였다. 정부 역시 지금까지의 성과를 '관리'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어느 누구도 새로운 변화를 수용하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나가려는 자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곳곳에서 다가오는 변화를 거부하면서 기존 기득권을 지키려는 싸움에만 열중하고 있다. 기업들은 자신들이 확보한 영역 지키기, 노동조합은 지금 얻은 이익을 조금이라도 더 키우기 등을 걸고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다.

그 사이 많은 산업분야에서 기술적으로 거의 따라잡았다고 생각했던 선진국들이 새로운 산업을 열어 가면서 우리 산업들과 다시 격차를 벌리기 시작했다. 더욱 무서운 것은 우리 산업을 뒤따라오는 줄로만 알았던 중국 산업들이 우리 산업을 앞서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정보통신기술(ICT)과 서비스를 결합한 분야에서는 우리 산업의 실적을 훨씬 뛰어넘는 중국 기업들의 활약상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도 변화를 거부해오던 일본 산업조차도 지난 '잃어버린 20년' 동안의 교훈을 딛고 눈부신 변신을 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나라 산업만 이러한 변화의 물결에 뒤처져버리지 않았나 하는 두려운 마음까지 든다.

기실 우리나라 산업의 발전 역사를 더듬어보면 과감한 변화의 수용에서 도약의 모멘텀을 얻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자원, 자금, 기술 그 어느 것도 없던 나라에서 수출 경공업을 일군 신화, 대일 청구원 자금으로 이룬 철강산업의 신화, 어촌을 변모시킨 조선산업의 신화, 모두의 우려 속에서도 꿋꿋한 기업가정신을 발휘해서 만든 반도체 신화, 개도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자 엔진 개발에 뛰어든 자동차 신화 등등 변화를 내다보고 과감한 투자를 해나간 곳에서 우리 산업의 경쟁력은 뛰어올랐다.
그 어느 하나 실패의 위험을 안지 않은 경우가 없었지만 변화를 수용하고 극복하려는 자세 덕분에 신화가 가능했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다.

지금 우리 산업이 처한 위기는 모두가 '탓'을 찾기만 할 뿐 그 탓을 기회로 돌리려는, 즉 변화를 수용하고 새로움을 개척하는 정신이 실종돼버렸다는 데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지 않나 싶다.
새로운 변화를 추구해야 하는 신산업들에서도 영역싸움이 벌어지고 있다고 하니 우리 산업의 병은 깊어지고 있는 셈이다.

김도훈 경희대학교 국제대학원 특임교수·전 산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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