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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러스트 벨트'를 가다] 지방에 공장 짓고 본사는 서울…‘굴뚝경제’만 믿다 지역경제 피폐

장민권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4.12 17:04

수정 2018.04.12 17:09

<2부> 지역정책 ‘절반의 성공’ ..(2) 단순 제조공장에만 의존하는 경제
본사 68%가 수도권에 집중 R&D 조직도 64%가 몰려
지방공장도 中.베트남 이전 GM폐쇄 군산 등 타격 막대
[대한민국 '러스트 벨트'를 가다] 지방에 공장 짓고 본사는 서울…‘굴뚝경제’만 믿다 지역경제 피폐


지역경제가 어려움에 처한 근본 원인은 기업의 핵심(소프트웨어)이라고 할 수 있는 본사와 연구개발(R&D)센터는 모두 서울과 수도권에 모여 있고 지역에는 생산공장(하드웨어)만 밀집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의 분석이다. 1970년대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기, 정부는 경제개발정책에 따라 남동임해공업지역 등 지역에 대규모 산업단지를 조성했고 대기업들은 생산시설을 설치했다. 1.2차 협력업체가 그 주변에 모여들면서 해당 지역의 경제 생태계가 조성됐다.

지역 '굴뚝'들은 지난 40여년 동안 '한강의 기적'의 숨은 주역이었지만 지금은 폐업위기에 직면했다.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베트남 등으로 대기업들이 떠나고 있어서다. 지역경제도 피폐해지고 있다.


■본사 '열에 여섯' 수도권

산업연구원 최윤기 박사가 통계청 2014년 자료를 바탕으로 산출한 '종업원 300인 이상이면서 지점 종업원이 100인 이상'인 대기업 1281개사 본사 시·도별 소재지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서울(636개사.49.7%), 경기도(243개사.18.2%)로 수도권 집중도가 67.9%에 달했다. R&D 조직도 비슷하다. 우리나라 전체 R&D 조직은 총 3만2014개로 수도권이 전체의 63.8%를 차지하고 있고, R&D 인력도 전체의 60.9%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R&D 투자가 대부분 수도권에 집중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2014년 기준 한국의 R&D 투자는 63조7341억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4.3%에 달한다. 이 중 수도권에 투자된 자금이 67.4%다. 광역시·도 가운데 지역내총생산(GRDP) 대비 R&D 투자 비중이 높은 지역은 대덕연구단지를 비롯한 각종 국책연구단지들이 모여 있는 대전(19.4%) 정도다. 나머지 여타 광역시·도의 GRDP 대비 R&D 투자 비중은 1~2% 수준에 그친다.

본사와 R&D 조직이 집중된 서울과 수도권의 경우 제조업황에 따른 부침이 심하지 않을 수 있지만, 충청도 이남 지방도시들의 경우 대부분 '굴뚝산업'에 의존하고 있다. 한국GM 공장 폐쇄를 앞두고 있는 군산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GM 군산공장의 근로자가 2000여명, 협력업체 직원들까지 1만2700여명이 실직위기 상황이다. 이 탓에 지역경제 생산량은 2조2900억원 줄어들어 최대 15~16%의 GDP 타격이 예상되고 있다.

올해와 내년 지역경제는 더욱 악화할 수 있다. 3월 제조업 체감경기지수(BSI)는 74로 넉달 연속 하락했다. 1년3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지난해 국내 제조기업의 평균가동률은 71.9%를 기록했다. IMF 외환위기가 일어났던 1998년(67.6%) 이후 19년 만의 최저치다. 100개를 생산할 능력이 있는데도 71.9개밖에는 만들지 않았다는 뜻이다. 100명의 직원이 있다면 28명은 일이 없었다는 의미다. 대량실업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실제 지난 2월 현장직 15만3000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2013년 1월 이후 가장 큰 폭 줄어든 것이다. 대다수가 현장직인 기능.기계조작.조립.단순노무 종사자였다. 현장은 대부분 지방에 몰려 있다 보니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이 입는다. 실제 지난해 10월 기준 특별시.광역시를 제외한 전국 시·군 가운데 거제시의 실업률이 6.6%로 가장 높았고 통영(5.8%)과 안산(5.3%)이 뒤를 이었다. 거제와 통영 등은 조선업체 제조 현장이다.

■경쟁력 없는 공장, 버리면 그만

전문가들은 '한국형 러스트벨트'가 가속화될 것이라고 봤다. 대기업 입장에선 이른바 '브레인'이라고 할 수 있는 본사와 R&D만 두고 생산공장은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이나 베트남 등으로 이전하는 편이 더 낫기 때문이다. 특히 과거엔 정부 차원에서 국가산업단지를 꾸리고 대기업을 중심으로 1~2차 협력업체를 묶어뒀지만 지금은 공장을 빼는 편이 훨씬 더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상황을 지역에서 제조공장을 운영하는 중소기업들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창원에서 대기업에 조선기자재, 중전기부품을 납품하는 한 중소기업 대표는 "자금 여력이 되는 협력업체들은 대기업 생산공장이 해외로 이전할 때 함께 이전하는 경우도 있다"며 "다만 독자적인 기술이나 브랜드를 가지고 판매하는 협력업체가 아닌 단순 납품업체의 경우 그에 상당한 리스크를 짊어지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두희 산업연구원 박사는 "기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본사와 R&D 조직은 잘 움직이지 않는다.
소프트웨어라고 할 수 있는 디자인과 설계를 브랜딩화시키는 기능은 그대로 두고 언제든지 옮길 수 있는 공장만 지역에 남은 셈"이라며 "구미의 삼성전자가 베트남으로, LG디스플레이가 파주로 이전하면서 이 도시의 경제가 무너진 사례가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이병철 차장(팀장) 김아름 김용훈 예병정 박소연 장민권 기자

fact0514@fnnews.com 김용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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