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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러스트 벨트'를 가다]첨단지식산업 메카 꿈꾸는 대구… 현실은 ‘요식업의 천국’

장민권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4.11 17:09

수정 2018.04.11 17:09

지방경제 활성화 해법 <2부> 지역정책 '절반의 성공'(1)지식산업 대도시 쏠림
구로디지털단지 롤모델 삼아 도시재생뉴딜사업 펼쳤지만 임대업자들의 반발 만만찮아
전통 제조도시 공동화현상은 전세계적인 트렌드..지식산업일수록 대도시 몰려
산업화 시대 섬유와 기계를 주력으로 하는 제조업 도시였던 대구는 이들 산업이 쇠락하자 '김광석 다시 그리기' 거리 등을 조성, 관광객 유치를 통한 지역경제 살리기에 주력하고 있다. 산업구조도 지식집약산업으로 변신을 모색하고 있다. 사진=장민권 기자
산업화 시대 섬유와 기계를 주력으로 하는 제조업 도시였던 대구는 이들 산업이 쇠락하자 '김광석 다시 그리기' 거리 등을 조성, 관광객 유치를 통한 지역경제 살리기에 주력하고 있다. 산업구조도 지식집약산업으로 변신을 모색하고 있다. 사진=장민권 기자

[대한민국 '러스트 벨트'를 가다]첨단지식산업 메카 꿈꾸는 대구… 현실은 ‘요식업의 천국’


【 대구=특별취재팀】 대구 중구 대봉동 골목을 들어서자 가수 고 김광석의 '광야에서'가 흘러나왔다. 350m 남짓한 벽에는 김광석의 얼굴을 그린 커다란 벽화와 그의 대표곡들의 가사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우범지역으로 손꼽히던 방천시장 인근에 조성된 '김광석 다시 그리기' 거리다. 주말이면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지난해만 146만명이 다녀갈 정도로 명소로 자리잡았다. 대구는 '서부시장 프랜차이즈특화거리', '마비정벽화마을' 등 전통시장과 생활예술을 접목한 관광상품을 개발해 침체된 지역 경제 살리기에 주력하고 있다.

관광뿐 아니다. 섬유와 기계를 중심으로 한 전통 제조업 도시였던 대구는 요식업 도시가 됐다. 전국 단위 요식업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대구에서 '스타트업(창업)'을 한 곳이 유독 많다. 실제 전국 3500개 외식 프랜차이즈 업체 중 대구.경북 지역에 본사를 두고 있는 업체가 400곳이 넘는다.

지난달 29일 오후에 방문한 대구의 가장 큰 상권인 동성로 거리에는 '미즈컨테이너', '서가앤쿡', '토끼정', '반월당' 등 대구를 대표하는 주요 프랜차이즈 업체들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한 커피 프랜차이즈 업체 점주는 "대구에 기반을 둔 프랜차이즈 업체가 워낙 많다 보니 다른 유명한 프랜차이즈가 대구에서 장사를 해도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2015년 기준 대구의 서비스업 비중은 전체 70.9%에 달하는 반면 제조업은 21.9%에 불과하다.

■요식업 도시 대구, 생산기여도는 미미

하지만 요식업의 대구 지역내총생산 기여도는 미미하다. 결국 주력 산업이 침체하면서 질 좋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영세 자영업으로 몰리고 있는 형국이다. 대구는 전국에서 자영업 비중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지난 2016년 기준 대구지역 취업자 중 자영업자 비중은 22.8%로 7대 특별.광역시 중 1위를 차지했다. 전국 평균(21.2%)도 상회하는 수치다. 대구의 인구 1000명당 사업자 수(95개)도 같은 지자체 중 서울(104개) 다음으로 가장 많다.

대구는 도시에 돈을 벌어 줄 미래 먹거리 사업을 고민하고 있다. 염색.섬유.도금업 등에서 탈피해 지식집약적 산업으로 구조 고도화를 유도하는 방향이다. 산업단지 도시재생뉴딜사업이 대표적이다. 대구에서 가장 노후화된 서대구산업단지는 정보기술(IT) 입주기업들의 메카로 자리매김한 구로디지털단지를 '롤모델'로 삼고 변신에 들어갔다.

그러나 사업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산업단지 전환에 따른 규제를 우려한 임대업자들의 반발에 부딪힌 것이다. 서대구산업단지관리공단 관계자는 "서대구공단은 건물을 빌려 사업하는 업체들이 많다"면서 "임대업자 입장에서는 노후공장을 갖고 있어도 임대료가 들어오는 만큼 굳이 단지 재생에 따른 리스크를 감수하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대구시에서 도로확장과 주차장 신설 등을 지원하고 있지만 한 구간을 제외하면 사업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해당사자들이 얽혀 있어 현실적으로 보상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답은 첨단 지식산업

첨단 지식산업 발전으로 기존 도시가 아닌 새로운 지역에 인구, 인프라 등 자원이 모이면서 전통 제조업 도시가 쇠락하는 '제조업 공동화' 현상은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다. 미국 뉴욕을 비롯해 독일 베를린, 영국 런던 등 '러스트벨트(쇠락한 제조업 도시를 지칭)'가 아니더라도 선진국 대부분의 전통 제조업 도시가 이런 전철을 밟았다. 제조업이 빠져나간 빈자리를 메꾸기 위한 지자체들의 노력이 힘겹지만, 한 번 파괴된 산업 생태계를 다시 살리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토지와 노동이 이윤 창출의 주요소였던 과거 제조업 시대에는 큰 부지가 중요했다. 자연히 공장이 들어선 부지를 중심으로 상권과 주거지역이 형성됐다. 하지만 정보화 사회에 들어서 '지식' 자체가 생산 요소가 되면서 고급 노동력이 모이는 대학가나 고객과의 대면접촉 활성화를 위한 교통.통신의 요충지가 새로 떴다. 더 이상 제조업 중심의 고용 창출 공식이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세계의 총부가가치 대비 제조업의 비중은 1970년 25.7%에서 2014년 16.5%로 축소됐다. 주요 7개국(G7)들은 이 기간 20% 초반에서 많게는 30%에 육박하던 제조업 비중을 10%대 수준까지 낮췄다.

지식 생산을 담당하고 있는 도심 지역은 새로운 경제 지도를 만들어내고 있다. 실리콘밸리가 위치한 미국 새너제이나 샌프란시스코 등 미국 지식 중심 도시들은 고소득 일자리를 창출해내며 도시를 키우고 있다.
새너제이에서 새롭게 창출된 직업 중 3분의 2, 샌프란시스코의 경우 절반 이상이 고소득직으로 분류된다. 미국 남부에서 테크의 중심지로 떠오른 텍사스 오스틴도 2009~2013년 새 일자리 성장률이 10.5%를 넘겼다.
대학 타운인 콜로라도주 볼더, 미시간주 앤아버, 버지니아주 샬럿빌과 같은 도시들은 인구 1인당 스타트업을 시작하는 비율이 미국 전역에서 가장 높다.

특별취재팀 이병철 차장(팀장) 김아름 김용훈 예병정 박소연 장민권 기자

psy@fnnews.com 박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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