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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의 채권포커스] 삼성증권 사태, 팻 핑거와 공매도

마켓포커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4.09 15:18

수정 2018.04.09 16:18

사진=파이낸셜뉴스
사진=파이낸셜뉴스


4월6일 9시.

삼성증권은 주가 3만9600원을 시초가로 거래를 시작했다. 주가는 초반 4만원선을 향해 올라갔다. 하지만 10시가 채 되기 전 주가가 갑자기 급락하기 시작했다.

4월6일 9시56분.

삼성증권 주가는 11.68% 폭락한 3만5100원선으로 떨어졌다. 이후에도 주가는 등락을 거듭한 뒤 전일보다 3.64% 하락한 3만8350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삼성증권 주가가 보여준 변동성의 원인은 잘못된 현물 배당 때문이었다.


우리사주 283만주(지분율 3.17%)에 대해 주당 1000원의 배당금 대신 주당 1000주가 입고되는 사고가 발생한 뒤 일부 삼성증권 직원이 이 주식을 처분하면서 시장에 큰 충격을 준 것이다.

이 사고는 투자자들 뿐만 아니라 금융업계 종사자 모두에게 놀라움을 안겼다. 삼성증권은 6일의 사고에 대해 담당 직원의 실수라고 해명했지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납득하기가 쉽지 않았다. 우선 실수의 규모가 엄청났다.

지난 금요일 보유 자사주가 없는 상태에서 신주발행 절차 없이 발행주식수(8930만주)나 발행한도(1억2000만주)의 20~30배에 달하는 28.3억만주가 입고되는 엄청난 실수가 발생한 것이다. 원래 대로라면 삼성증권 우리사주 283만주에 28억원을 배당했어야 하지만, 28억주 이상이 배당돼 버린 것이다. 시가총액 기준으로 110조원이 넘는 황당한 돈이 배정된 셈이었다.

또 주식을 배당받은 직원 가운데 16명이 501만주 남짓을 매도해 시장을 흔들었다. 대략 배당 오류 물량의 0.2%에 가까운 501만주가 장내에서 매도된 것이다. 이 규모는 그 날 주식 종가를 기준으로 대략 1900억원 수준이었다.

■ 삼성증권과 팻 핑거
현금배당이 이뤄져야 하는 상황에서 현물(주식)배당이 이뤄진 가운데 배당받은 주식을 실제 매매하는 일까지 벌어지자 사람들은 경악했다.

주식 배당은 자사주 보유주식 한도 안에서 가능하다. 그런데 1천원이 1천주로 바뀌어버린 황당한 일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미스테리하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아무튼 이번 사건은 표면적으로 입력 오류, 그리고 내부통제 시스템이 이 오류를 걸리내지 못한 데 따른 실수 등이 엮인 것으로 보인다.

주문 실수를 흔히 팻 핑거(fat finger)라고 부른다. 손가락이 뚱뚱하면 자판을 정확하게 두드리기 어렵기 때문에 입력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국내에선 2013년 한맥투자증권의 옵션 거래 담당자가 이자를 계산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수치를 입력해 462억원의 손실을 보고 회사를 패망으로 이끈 사례가 유명하다. 증권사 등 금융사들 사이에 종종 이같은 사고가 발생한다.

최근 팻 핑거와 관련해 유명한 해외 사례는 2005년 일본의 미즈호 증권에서 일어난 사고다. 당시 미즈호증권의 트레이더가 제이콤이라는 업체의 주식 1주를 61만엔에 팔아달라는 주문을 61만주를 1엔에 파는 주문을 실행하는 실수를 범했다. 당시 이 회사 주가는 순식간에 하한가로 직행해버렸다.

지난주 사건은 삼성증권이라는 큰 증권사에서 일어났다는 점에서 놀라는 사람이 많았다.

자산운용사의 한 주식매니저는 "삼성증권이라는 대형 증권사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이 놀랍다"면서 "터무니 없는 실수를 거르는 장치가 없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이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는 증권사 결제와 시스템 관리, 도덕성 등의 문제를 노출했다.

다른 자산운용사의 한 매니저는 "삼성증권 사태는 증권사 배당 입력 시스템의 허술함, 관리 부실, 조치의 미숙, 그리고 직원의 욕망이 결합돼 나타난 사건"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운용사 사람들도 이번 사건에 대해 많이 놀랐다. 삼성증권과 같은 곳에서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점에서 납득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지난주 사건으로 증권업계의 시스템 점검은 피할 수 없게 됐다.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예컨대 증권금융이 삼성증권에게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줬는데, 삼성증권 자체적으로 유령주식을 준 것인지 여부 등 과정 전반을 따져서 조사를 해야 한다"면서 "어떤 실수가 개입됐는지 확실히 판단해야 하며, 증권사 시스템 전반에 관한 점검도 피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 공매도 논란
일부 삼성증권 직원이 잘못 들어온 주식을 팔아치운 것은 공매도를 떠올리게 한다. 공매도는 가지고 있지 않은 증권을 파는 것을 말한다.

현재 국내에선 빌려서 주식이나 채권을 파는 대차거래, 즉 '차입 공매도'(covered short sale)는 허용된다. 기관투자자들이나 외국인은 예탁원, 국민연금, 증권금융 등에서 증권을 빌려 판 뒤 나중에 되갚는 식으로 대응을 한다. 개인들도 공매도가 가능하지만 쉽게 접근하지 못한다.

증권을 빌리기 전에 매도부터 하는 '무차입 공매도'(naked short sale) 행위는 금지돼 있다.

삼성증권 사태에서 110조원이 넘는 유령주식 가운데 한 직원은 350억원이 넘는 100만주 가량을 시장에 내다 팔았다. 사실상 자신의 주식도 아니고 빌린 주식도 아닌 주식을 판 셈이어서 이 거래는 무차입공매도와 비슷하다.

이번 일을 계기로 적지 않은 개인투자자들이 '공매도 금지'를 요구하고 있다. 일부는 청와대 게시판에 공매도 금지 청원 글을 올렸다. 기관투자자에 비해 불리한 입장에서 주식 매매를 한다고 생각하는 개인들 중 이번 일을 계기로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보기도 한다.

한 개인 주식투자자는 "개인들 가운데 기관, 외국인의 공매도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다. 이는 개인이 그간 덩치 큰 기관투자자들의 공매도 때문에 피해를 많이 입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기관들은 개인이 산 종목들에 대한 공격수단으로 공매도를 활용하고 있어 공매도 금지 등 조치가 필요하다. 이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고 주장했다.

공매도는 '없는 것을 파는 것'을 의미한다. 즉 매도한 뒤 나중에 되사서 갚는 것을 말한다. 증권 가격이 떨어질 경우를 예상해서 취할 수 있는 전략이다. 이는 일반적인 매매, 즉 매수한 뒤 매도하는 것과 반대 방향이다.

일각에선 이번 사건을 공매도 문제로 연결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는 지적도 내놓고 있다. 증권업계에선 공매도를 부정적으로만 보는 개인투자자들의 시선이 잘못됐다는 인식도 강하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번 삼성증권 사태를 공매도 문제로 접근하는 것은 맞지 않아 보인다. 시스템과 관리, 그리고 증권사 관계자의 도덕적 해이 문제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공매도는 증권시장의 유동성 확보 등을 위한 목적으로 도입됐다. 아울러 적정 주가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공매도가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면서 "고평가된 종목에 대해선 공매도로 대응할 수 있고 지나친 공매도로 인해 주가가 저평가됐다면 매수로 대응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증권업계 관계자는 "기관들이 공매도를 그리 많이 하는 것도 아니다.
일부 종목의 경우 공매도가 없었으면 지속적으로 오르면서 거품을 형성한 뒤 이후 폭락으로 개인들에게 더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개인투자자들의 경우 롱 편향이 심하다.
내 주식은 영원히 오를 것이란 막연한 환상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아 공매도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했다.

taeminchang@fnnews.com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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