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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러스트벨트'를 가다]20여년 집중 투자에도 여전히 무너지는 '지역경제'

김규성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4.08 16:43

수정 2018.04.08 16:43

한국의 지역이 붕괴하고 있다. 20여년 동안 막대한 재정과 정책 지원에도 지역의 경제는 곪아터지고 인구는 지속적으로 유출되고 있다. 지역 경제의 상징인 '부자도시 울산'은 한국판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도시를 지칭)'에 직면해 있다. 한국에는 왜 스타벅스, 보잉 본사가 있는 미국 시애틀 같은 지역도시가 없을까. 베이징과 도쿄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창업도시', '교토식 경영'으로 이름높은 중국 선전과 일본 교토같은 성공 모델이 한국에는 나오지 않을까.

문재인 정부는 '지역이 강한 나라, 균형 잡힌 대한민국'이란 지역발전전략을 경제의 핵심 키워드로 제시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지역을 강조한 것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도 별반 다르지 않다. 20여년간 지역산업 및 균형발전 전략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다.
세종시에 정부 부처를 옮기고, 공공기관을 지역으로 이전한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지역은 여전히 무너지고 있다. 정부가 지난 6일 국회에 제출한 추가경정예산안에 지역 관련 예산이 1조원 포함된 것이 지역경제의 현 실태를 반영하는 가장 최근 사례다. 차량 번호 인식 시스템 분야 전국 1위 판매율을 기록한 R사는 지역을 모태로 한 기업의 어려움을 반영한다. 전북 전주에 본사를 두고 있는 R사는 2002년 설립했지만 연구소는 수도권인 안양과 서울 송파에 두고 있다. 연구개발(R&D) 인재를 확보할 수 없고 다른 기관과의 협력도 전주에서는 할 수 없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송재호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장은 8일 "(지역 균형발전 관련 정책은 중앙 정부, 지방자치단체 모두) 새로운 출구전략이 필요하다"고 단언했다.

'무너지는 지역' 현상은 통계치로도 확인된다. 파이낸셜뉴스가 통계청 자료를 근거로 수도권과 지방의 지역내총생산(GRDP)을 집계해 본 결과, 수도권 GRDP 비중은 지난 2016년 기준으로 49.5%를 기록했다. 참여정부가 국가균형발전 정책을 쓰기 직전인 지난 2002년 49.5%와 같았다. 통계를 만든 지난 1986년 이후 역대 최고치였다. 최근 5년 동안 수도권 비중은 지속적으로 상승 중이라는 점도 특이했다.

수도권보다 지방에 더 많은 기업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통계치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지난 2015년 기준 수도권에 위치한 기업은 총 1835개이지만 지역에는 2040개의 기업이 있다. 핵심은 기업규모다. 500인 이상 대기업은 수도권에 1075개가 있었지만 지역에는 전체 기업에 절반도 안 되는 756개에 그쳤다.

이두희 산업연구원 지역정책연구실장은 "수도권에 주로 기업의 본사나 첨단산업 등이 위치해 있다. 반면 지방에는 주력산업이 노후화된 지역이 많다"며 "그 나마 수도권 규제로 버티고 있다"고 지적했다. R사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본사를 서울로 이전해야 되는 것이 아니냐는 논의를 많이 했다. 기업 브랜드를 생각해봐도 수도권 기업이 유리하다. 지역감정이 있어 우리 같이 본사가 전라도에 있으면 경상도나 강원도 등에서 영업에 불리하다. 본사가 수도권에 있다고 하면 중립적으로 봐주니 이전을 생각해본 것이다"고 했다.

지역의 몰락이 정부 재정 투자 부족에서 온 것만이 아니라 것에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정부의 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의 규모는 연 10조원이다. 2003년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출범했다. 2003년부터 지역발전을 위해 연간 10조원씩은 썼다는 의미다. 과감한 투자에도 지역발전이 부진한 원인은 핵심을 비켜간 투자 때문이다.

지역기업들이 원하는 투자는 '지역의 혁신성' 향상이었다. 혁신이 이뤄지면 인재가 몰리고, R&D에 탄력이 붙고, 투자 유치가 가능하다. 지역경제 활성화 생태계를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반적인 혁신활동을 평가하는 지수 중에 '총합혁신지수'가 있다. 2003년부터 지역에 대한 투자는 이어지고 있지만 지난 2015년 기준 수도권의 총합혁신지수는 0.7848로 전국에서 가장 높다. 지난 2003년 0.7948과 비슷하다. 반면 지방 권역을 보면 충청권(0.7431)을 제외한 모든 권역이 0.3에도 미치지 못한다.

연구개발 투자비와 연구개발 조직수의 격차는 지속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연구개발투자비의 경우 1995년 수도권(4조 9000억원)이 비수도권(4조 5000억원)으로 비슷했지만 2015년에는 수도권(44조 3000억원)이 지역에 비해 2배 가량 많았다.

서정현 산업연구원 연구원은 "참여정부 이후로 지역발전 정책을 펴왔지만 인구, 일자리, 취업자는 수도권으로 몰린다"며 "결국 사람 문제다.
지역 중소도시에 사람이 더 머물 수 있는 환경 조성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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