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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 해외 대기획 3탄] 좌파정책 걷어내자 ‘3% 성장’ 회복..복지 빼앗긴 국민은 분노

이태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4.02 16:45

수정 2018.04.02 20:04

[포퓰리즘의 비극 중남미를 가다] 아르헨티나 - <1>경제 대개혁 ‘몸살’
기업인 출신 마크리의 개혁..법인세 낮추고 연금은 묶어 철도 등 인프라 대대적 투자
국민은 "당장 살기 힘든데"..인플레 심한데 연금은 축소..시내 곳곳서 연일 시위행렬
지난 3월 14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카샤오 거리에 모인 청년들이 북을 두드리며 마크리 정부 복지 긴축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이태희 기자
지난 3월 14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카샤오 거리에 모인 청년들이 북을 두드리며 마크리 정부 복지 긴축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이태희 기자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 건물 외벽에 '모든 것을 빼앗겼다. 두려움마저 사라졌다'는 내용의 시위문구가 그려져 있다. 사진=이태희 기자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 건물 외벽에 '모든 것을 빼앗겼다. 두려움마저 사라졌다'는 내용의 시위문구가 그려져 있다.
사진=이태희 기자

【부에노스아이레스(아르헨티나)=이태희 남건우 기자】 아르헨티나가 독한 마음을 먹고 허리띠를 졸라맸다. 그러자 숨도 못 쉬겠다는 국민들의 비명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지난 3월 14일 오전 7시께(현지시간) 부에노스아이레스 카샤오 거리. 청년 10여명이 모여 북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입술을 질끈 깨문 채 비장한 표정이었다. 하나둘 사람이 늘어나더니 어느새 4차로 거리를 가득 메웠다. 6세 어린아이부터 70대 노인까지 연령대도 다양했다. 형형색색 깃발도 나부꼈다. 깃발엔 '모든 것을 빼앗겼다' '라틴아메리카 좌파일동' 등 문구가 적혀 있었다.

출동한 경찰은 익숙한 듯 재빨리 폴리스라인을 만들었다. 방송 인터뷰에 응하는 일부 시위대만 다소 흥분된 목소리를 냈을 뿐 대체로 차분한 분위기 속에 시위가 진행됐다.

시위에 참여한 한 40대 남성은 "오늘 시위는 비공식으로 진행된 것"이라며 "이런 작은 시위들을 자꾸 열어야 정부와 거래를 할 수 있다"고 다소 긴장된 말투로 설명했다. 그의 티셔츠에는 '마크리, 그만 멈춰'라고 적혀 있었다. 또 다른 시위자는 "마크리 정부가 3000만페소(약16억원)를 실업자를 위한 사회복지 정책에 쓰겠다고 해놓고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면서 "정부가 복지정책을 다 없애려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크리 '바꾸자!'

지난 2015년 12월 집권한 기업인 출신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경제대개혁을 시작했다. 마크리 대통령은 '바꾸자!'(Cambiemos)라는 구호를 내걸고 선거운동에 나섰던 만큼 당선 직후 포퓰리즘과 결별을 선언했다.

마크리 대통령은 불과 2년 만에 빠른 속도로 '노동.연금.세제' 등 3대 개혁안을 마무리 짓고 있다. 12년 동안 지속됐던 좌파정책을 한 번에 걷어내는 개혁이다.

마크리 정부는 먼저 노동법 개정을 통해 해고근로자 소송을 일부 제한시켰다. 또 세제개편안으로 현행 35%에 달하는 법인세를 25%까지 낮추는 방안을 추진했다. 친기업 정책으로 기업 활동에 날개를 달아주겠다는 의도다.

막대한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연금제도에 손을 대기도 했다. 퇴직 전 월급의 80% 수준에 달했던 연금은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에게도 지급하는 등 무분별하게 운영돼 재정적자의 주요 원인으로 꼽혀왔다.

마크리 정부 개혁은 수치적으로 성공적인 모습을 보였다. 2016년 -3.7%까지 떨어졌던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3%대로 회복했다. 지난해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아르헨티나 신용등급을 B2로 상향 조정하기도 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디폴트(채무불이행)에서 벗어난 지 불과 1년 만에 100년 만기 초장기 국채를 27억5000만달러(약 3조1259억원)어치 발행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경제지표는 좋아졌지만 익숙했던 복지를 빼앗긴 국민들은 분노했다. 지난해 말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대와 경찰이 물리적 충돌하는 사고도 발생했다. 당시 노조 지도자들은 총파업을 선하기도 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에서 크고 작은 시위 모습을 보는 것은 어느새 익숙한 풍경이 됐다.

■'복지' 대신 '인프라'

마크리 정부 들어 생긴 또 다른 변화는 인프라(사회기반시설) 투자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를 걷다보면 100m에 한 번씩은 공사현장을 만날 수 있다. 도로.가스.전기.상하수도 모두 뜯어고치고 있다. 잦은 공사로 인해 정전사태가 자주 발생하기도 한다.

대규모 인프라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최근엔 인접 국가들(브라질.파라과이.볼리비아.우루과이)과 협업해 수로와 철도 정비사업을 시작했다. 마크리 정부는 임기 내 총 142억달러 규모의 철도 인프라 투자계획을 밝힌 바 있다. 상대적으로 낙후된 아르헨티나 북부 지역의 인프라 개선을 위해선 160억달러를 지출할 계획이다. 복지정책을 줄이고 인프라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굳은 의지다.

인프라 투자를 늘리는 것에 대해 국민들 의견은 엇갈린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시급하다는 반발이 거센 가운데 경제체질을 개선하는 작업인 만큼 함께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연금 수령을 3년 앞둔 노점상인 페드로씨(62)는 "인플레이션이 심해 모든 물건 값이 폭등하고 있는데 연금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며 "이런 상황으로는 살 수가 없기 때문에 시위를 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택시기사 프란시코씨(59)는 "마크리 정부 들어 서민들이 많이 힘들어진 것은 현실"이라면서도 "이전 정부의 잘못을 바로잡는 과정인 만큼 이런 순간을 함께 견디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한편 마크리 정부가 이끄는 집권여당연합은 지난해 10월 총선에서 승리를 거뒀다. 이 선거는 마크리 대통령 집권 이후 처음 치러졌던 선거로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이 강했다.
총선 이후 자신감을 얻은 마크리 정부의 긴축정책은 더욱 탄력을 받아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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