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미국/중남미

[fn 해외 대기획 3탄] "승리는 우리 것" 자신하는 마두로.. "관심없다" 등돌린 민심

김유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3.29 16:51

수정 2018.03.30 09:24

포퓰리즘의 비극 중남미를 가다 <5> 베네수엘라-대선 앞둔 정국 시계제로
12월→4월→5월 갈지자 대선
친정부파 제헌의회 출범 놓고 대규모 시위도 결국 무용지물
부정부패·선거조작 의심 확산, 선거 보이콧 움직임마저 퍼져
지지층 '샤이 마두로' 변수로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 한 건물 게시판에 "나는 대화할 것"이라고 말하는 마두로 대통령 풍자 그림이 걸려 있다. /사진=김유아 기자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 한 건물 게시판에 "나는 대화할 것"이라고 말하는 마두로 대통령 풍자 그림이 걸려 있다. /사진=김유아 기자


【 카라카스(베네수엘라)=김유아 김문희 기자】 "실망시키지 않겠다. 승리는 우리의 것이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오는 5월 대선 공식 출마를 선언하면서 자신감을 내보였다. 그러나 폭등하는 물가와 불안한 치안 때문에 돌아선 민심은 갈 곳을 잃은 상태다.
29일 베네수엘라 국회 관료 등에 따르면 당초 12월로 예정됐던 대선이 제헌의회의 결정에 따라 4월에서 다시 5월 20일로 수차례 조정됐다.

제헌의회는 지난 2015년 12월 총선에서 패한 마두로 정부가 국정운영권을 장악하기 위해 구성한 친정부파 기관이다. 제헌의회 출범에 분노한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지난해 4월부터 5개월 동안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벌이기도 했으나 큰 성과를 얻지 못했다. 이후 우파성향 야당연합(MUD)은 "5월 조기대선은 사기"라며 집단 보이콧을 주장했지만 최근 야당 인사인 엔리 팔콘이 대선에 출마하면서 내분이 일고 있다.

■"마두로와 군인 다 떠나라"

베네수엘라의 민심은 오는 5월 대선 참여 여부에 대한 질문만으로도 가늠할 수 있었다.

현지에서 만난 시민들은 대부분 "투표하지 않을 것"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지난해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 참여했다는 카르멘 피아요스씨(65.여)는 "이번 대선 자체가 불법인 데다 선거 결과도 조작될 가능성이 높아 대선에 참여하지 않을 예정"이라면서 "마두로 정부가 들어선 뒤 군인들의 부정부패가 이어지고 있다. 대선이 치러진 후에는 이 같은 상황이 더 악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르마 푸엔마요르씨(60.여)도 "정부가 이번 대선 결과를 조작할 게 뻔하다. 절대 투표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국가가 빈민에게 공급하는 CLAP 박스를 지원받고 있으나 제대로 배급받지 못해 현 정부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잃은 상태다. 푸엔마요르씨는 "지난해 12월 배급될 예정이던 CLAP 박스에는 돼지고기도 포함됐지만 받지 못했다"며 "들리는 바로는 군인들이 고기를 빼돌리기 위해 어딘가 숨겨뒀다가 결국 상해버려 폐기했다고 한다"며 정부에 대한 불신을 강하게 드러냈다.

시민들은 현 정부가 시행하는 정책에도 호응하지 않았다. 일종의 '시민 불복종(Civil disobedience)'을 행사하고 있는 셈이다.

마두로 대통령은 지난 1일 '조국 카드(El Carnet de la Patria)' 정책 시행을 발표했다. '사회주의자들의 카드'로도 불리는 이 신분증을 발급받는 시민은 의약품.학비 지원 등 각종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시민들은 복지혜택을 위해 개인 신상정보를 정부에 등록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입을 모았다. 글라두스 에스칼로나씨(58.여)는 "그까짓 복지혜택을 받기 위해 신상정보를 모두 등록했다가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정부의 정책은 믿을 수도 없고, 정당성도 없어 신경쓰지 않는다"고 전했다.

카라카스 텔레수르 방송국 내 전시된 '안녕,대통령!' 프로그램 촬영장. /사진=김유아 기자
카라카스 텔레수르 방송국 내 전시된 '안녕,대통령!' 프로그램 촬영장. /사진=김유아 기자

■속삭이는 '샤이 마두로'

심각한 경제난 등으로 인해 마두로 정권은 대외적으로 비난의 화살을 맞고 있지만 여전히 그를 지지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지난달 28일 찾은 방송국 텔레수르에도 차베스에 대한 향수가 남아 있었다. 텔레수르는 베네수엘라 정부 주도로 설립된 남아메리카 대륙 방송국으로, 친정부 성향 매체다.

방송국 내 1층 복도 벽에는 차베스가 정신적 스승으로 삼았던 체 게바라, 시몬 볼리바르 등 중남미 좌파의 대표 인사가 차베스와 함께 그려져 있었다. 1층 복도 한쪽에는 차베스 전 대통령이 매주 일요일 국민과 대화하는 모습을 중계한 '안녕, 대통령!' 촬영장을 재현해놓은 전시관이 자리잡고 있었다.

텔레수르의 프로그램 제작자인 루이스 아인다라씨(35)는 "차베스가 전 정권을 상대로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국민들은 비로소 희망을 되찾았다"면서 "이후 차베스가 TV나 라디오 등을 통해 역사를 말할 때면 자랑스러움을 느끼곤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현재는 미국과 유럽 등이 베네수엘라에 제재를 가하기 때문에 경제 상황이 좋지 않지만 석유와 금 등 풍부한 자원을 이용해 현 상황을 타개해야 한다"며 "마두로는 그럴 능력이 있다"고 덧붙였다.

자신을 '차비스타(차베스 지지자)'라고 소개한 에두아르도 엔리케씨(42)는 "마두로는 대형 버스운전사로 일했던 서민 출신이기 때문에 국민과 소통할 줄 안다"며 "산업이나 교육 방면의 국가사업을 잘 이끌고 있다"고 주장했다.
목소리를 낮춘 엔리케씨는 "요즘 차베스나 마두로를 옹호한다고 하면 사람들과 싸우게 되니 말조심해야 한다"고 털어놨다.

엔리케씨와 같은 '샤이 마두로'가 이번 대선에 변수로 작용할지는 미지수다.
서울대 라틴아메리카HK연구소 임대균 교수는 "차베스 정권에 대한 향수보다는 현 정권에 대한 실망감이 더 크게 작용할 수도 있다"며 "선거 투명성과 공정성이 보장되지 않아 야당의 승리를 예단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kua@fnnews.com 김유아 김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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