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fn 해외 대기획 1탄] 베트남 진출 1세대 섬유·봉제기업이 당면한 숙제

오은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3.25 19:06

수정 2018.03.27 16:46

[포스트 차이나를 가다] 베트남
최저임금 인상률 年평균 20% 육박.. 노동집약산업 '고부가가치화' 나서야
【 호찌민(베트남)=오은선, 권승현 기자】 지난 2월 베트남 남부 동나이성 짱봄현에 있는 한국 섬유기업 생산공장 앞에서 2000여명이 시위를 벌였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 섬유공장의 한국인 임직원 12명이 야반도주했다. 2000명에 가까운 근로자 1월분 임금과 사회보험료를 합한 312억동, 약 14억6000만원을 지급하지 않은 채 사라진 것이다. 본사 측은 "제때 납품업체로부터 대금을 받지 못해 경영이 어려워졌다"며 "재고를 팔아 임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추된 한국 기업의 이미지는 회복하기 어려워 보인다.

최근 베트남에서는 경영악화로 야반도주하는 한국 기업이 늘고 있다. 주로 낮은 임금만 노리고 베트남으로 간 제조.섬유.봉제산업 등 진출 1세대 기업들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이들 기업 때문에 한국의 이미지 실추는 물론이고, 현지에서 정상적으로 활동하는 한국 기업에도 심각한 피해를 입힌다.

업계 관계자들은 한국 기업만 4000개가 넘을 만큼 치열해지는 베트남 시장에서 1세대 진출기업이 살아남기 위한 방법으로 '신뢰 회복'과 '산업 고부가가치화'를 꼽았다.

베트남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가파른 임금상승이다. 베트남의 최저임금은 연평균 18%씩 오르는 추세다. 올해 최저임금은 평균 6.5% 인상이 확정돼 2012년 이래 가장 낮은 인상률을 보였지만 매년 거듭되는 임금인상으로 기업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인건비 상승에 취약한 제조.섬유.봉제산업 등 베트남 진출 1세대 기업들엔 직격탄이 된다.

베트남 정부가 주도적으로 고부가가치 산업과 자국산업 투자를 지원하는 점도 과거와 달라진 점이다. 2016년 우리나라를 찾은 쯔엉화빙 베트남 수석부총리는 "베트남은 2020년까지 현대화된 산업국가로 도약하기 위해 하이테크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려 한다"고 밝혔다. 현지에 진출한 봉제.섬유업계 등 노동집약적 기업 사이에서는 베트남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런 변화에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이다.

현지 진출한 한국기업 관계자들은 "아직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한국 봉제공장 사장이라고 하면 '빨리빨리'를 외치며 직원들을 부려먹는 악덕업주 이미지가 강하다"고 입을 모은다. 올 들어 현지에서 임금을 체불한 한국 업체만 섬유기업, 봉제기업을 포함해 3곳이다. 이로 인한 한국 기업의 이미지 악화가 심각한 상황이다. 화승비나를 비롯한 많은 진출 1세대 기업이 장학금, 지역행사 후원 등 사회적 책임(CSR) 활동에 전념하며 신뢰회복을 위해 애쓰는 이유다.


노동집약 산업에 대한 베트남 정부의 투자승인도 까다로워지고 있다. 최근 호찌민시 12군에 있는 한 봉제업체는 관할관청이 허가 연장을 불허해 어쩔 수 없이 다른 곳으로 이전한 일도 있다.
현지 진출 한국 제조업체 관계자는 "주요 도시와 떨어진 지방에서는 아직까지 봉제.섬유산업 투자를 환영하고 있기는 하다"며 "다만 진출 1세대 기업들이 노동집약적인 산업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혁신기술 등을 도입하지 않으면 경쟁이 치열해지는 베트남 시장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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