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게임은 문화콘텐츠일 뿐" VS. "중독된다면 치료 대상"

이병훈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3.25 17:01

수정 2018.03.25 17:01

WHO '게임중독' 질병 분류 추진
중독 정의 명확지않아 논란
직장인 홍모씨(27)는 취미가 게임이다. 일찍 귀가하는 날이면 잠을 줄여 가며 게임하는 것이 퇴근 후의 낙이다. 학창 시절에도 게임이 취미였지만, 취직 후 독립을 하자 게임하는 시간은 더욱 늘어났다. 하지만 홍씨는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하겠다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그는 "장시간 게임하는 사람을 장애로 몰 것이 뻔하다"며 "게임 플레이는 흡연이나 마약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게임중독의 질병 분류'를 둘러싼 논란이 재점화됐다.
WHO가 올해 중반으로 예정된 국제질병분류(ICD) 11차 개정(ICD-11)에서 '게임장애'를 정신건강질환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임중독을 둘러싼 이견은 이전부터 팽팽하게 맞서 왔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게임 과몰입 실태 종합조사 보고서를 매년 작성 중이다. 학부모들도 자녀의 장시간의 게임 이용에 대해 오래전부터 우려를 표해 왔다. 반면 관련업계와 이용자들은 게임을 계속하게 만드는 '재미 요소'를 '중독 요인'이라며 제재하려는 발상이 게임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는 행동이라는 입장이다.

2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게임중독을 둘러싸고 찬반 의견을 내놓는 양측 주장은 평행선이다. 팽팽히 맞서고 있는 양측 주장에 WHO가 '게임중독의 질병 분류'를 들여다 보면서 논쟁에 기름을 부었다.

■"게임중독, 보건 차원에서 예방해야"

게임중독을 제재하겠다는 입장에서는 중독 증상을 공중보건 영역으로 본다. 명백히 '치료'해야 할 증상이기 때문에 의학적 정의가 필요하며, 증상 파악을 마쳐야 예방을 위한 안전망을 구축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같은 시선은 WHO 발표문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WHO는 홈페이지를 통해 "ICD에 장애항목을 포함시키는 것은 공중보건 전략을 계획하고, 향후 추세를 모니터링할 때 고려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목적을 설명했다. 이어 "ICD-11에 게임장애를 포함시키면 전 세계 여러 지역에서 게임장애와 동일한 상태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치료프로그램 개발이 이뤄지며, 전문가의 관심도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2013년 국회에 발의됐던 '인터넷게임 중독 예방에 관한 법률안'에서 게임중독 유발지수를 측정하겠다고 해 논란이 됐던 사례도 이런 의도를 공유한다. 중독 정도를 정량화해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고, 사전 심의를 통해 지나친 중독을 예방하겠다는 것이다.

게임에 관심이 많은 자녀를 둔 일부 학부모는 이런 의도에서 중독 제재에 대한 공감을 표하기도 한다. 초등·중학교 자녀를 뒀다고 밝힌 한 학부모는 "부모의 지도만으로 게임을 자제시키기는 다들 힘들다고 할 것"이라며 "국가나 단체에서 나서서 (게임중독을) 막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중독물질 분류부터가 편견"

반면 관련 단체나 이용자들은 '게임중독'이라는 단어 자체에 편견이 담겨 있다고 본다. 게임의 재미가 이용자를 오래 붙드는 요소인데, 이를 '중독성'으로 규정하고 제재하겠다는 것은 몰이해라는 주장이다.

한국게임산업협회 등 8개 관련 단체는 성명서에서 "20억명이 즐기는 문화콘텐츠를 '질병'으로 분류할 수 있는지 상식적 차원의 검토가 필요하다"며 "자의적 판단에 따라 단순히 게임을 좋아하는 이용자들이 단순히 '게임장애' 질환을 갖고 있다고 분류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반발했다.

게임 이용자들의 분노도 비슷한 맥락이다. 취미로 게임을 즐길 뿐인데, 범죄인 약물이나 신체.정신적으로 치명적 병을 불러오는 알코올중독과 같은 선상에 놓는다는 것에서도 게임에 대한 기성세대의 편견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게임 이용자들이 주로 찾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게임중독에 대한 화두가 올라올 때마다 "그러면 게임 제작사는 마약 제조공장, 게임 유통사는 마약유통책인가"라고 비꼬는 댓글이 대다수다.

게임의 '중독 증상'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지 않은데도 치료 대상으로 단정하는 것은 성급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미국정신의학회(APA)는 WHO의 움직임에 부정적 인식을 나타내며 "정신질환 분류에 IDC와 함께 주로 이용되는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 편람(DSM)'은 게임장애의 유형을 '물질남용 장애'를 기초로 하는 반면 WHO는 실제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중점을 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bhoon@fnnews.com 이병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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