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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대통령 베트남 국빈방문]미래관계 위해 과거사 매듭 푸는 文대통령

조은효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3.23 17:45

수정 2018.03.23 21:02

"양국 불행한 역사에 유감의 뜻" '국부' 호찌민 주석 묘소 헌화도
베트남을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오전 하노이에 위치한 호찌민 주석 묘소에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베트남을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오전 하노이에 위치한 호찌민 주석 묘소에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 하노이(베트남)=조은효 기자】 베트남을 국빈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23일 "한국과 베트남이 모범적인 협력관계를 발전시켜 가고 있는 가운데 우리 마음에 남아있는 양국 간의 '불행한 역사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하노이 주석궁에서 열린 쩐다이꽝 베트남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에서 "양국이 미래지향적인 협력 증진을 위해 함께 힘을 모아가기를 희망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과거 한국군의 베트남전 참전과 민간인 학살을 직접 거론한 것은 아니나 우회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 사과를 표명한 것으로 비친다. 베트남전 참전에 대해 입장을 밝힌 한국 대통령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에 이어 문 대통령이 세번째다.


주목되는 '유감'이란 표현은 지난해 11월 문 대통령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베트남을 방문했을 당시 '호찌민-경주세계문화엑스포 2017' 행사의 영상축전을 통해 "한국은 베트남에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고 언급했던 것에서 한층 진전된 입장이다.

이날 오전 첫 공식일정으로 베트남 국부이자 베트남전을 승리로 이끈 호찌민 전 주석의 묘소를 찾아 헌화했던 것 역시 이런 입장의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하노이 바딘광장에 위치한 호찌민 주석 묘소 참배는 그간 한국 대통령이 방문할 때마다 과거 베트남전 참전 문제와 마주해야 하는 장소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양국 국교수립(1992년) 후 4년이 지난 1996년 한국 지도자로는 처음으로 베트남을 방문했으나 묘소엔 가지 않았다. 문민정부가 출범했지만 여전히 이데올로기적으로 대미(對美) 항전 지도자였던 호찌민을 어떻게 볼 것인지 명확히 입장이 정리되지 않은 시기였다. 베트남전 참전에 대한 별다른 입장 표명도 없었다.

입장 표명은 김대중 대통령 때부터다. 김 전 대통령은 1998년 12월 베트남 방문 당시 처음으로 묘소 입구에서 헌화하고 "불행한 전쟁에 참여해 본의 아니게 베트남인들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우리 국민이 마음의 빚이 있다. 그만큼 베트남의 성공을 간절히 바란다"고 우회적인 표현을 썼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나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각각 호찌민 묘소를 참배했지만 과거사에 대한 사과나 언급은 없었다.

문 대통령의 유감 표명은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수위가 높다.
이번 베트남 방문에 앞서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사과도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해서 해야 한다"며 베트남 측이 이에 대한 공론화를 원치 않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 관계자는 "외교라는 것은 상대방의 인식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우리가 그런 문제들을 이야기하면 베트남 측에서 '그 뜻을 잘 받아들이겠다며 부각시키지 않는 게 좋겠다'든가,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인의 마음을 이미 이해하고 있다는 식의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유감의 뜻"이란 입장이 나온 건 최근 국내에서 한.일 관계에 빗대 한국도 베트남에 사과할 것은 사과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부 형성되고 있는 점,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으로서의 정체성, 양국이 호혜적 발전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일부 과거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판단이 두루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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