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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이사람] 정순구 역사비평사 대표 "조선시대는 보수적? 후기만 해당"

한영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3.18 19:05

수정 2018.03.19 16:40

중기까지 재산상속 딸.아들 구분 없이 받아
성리학 도입후 차별 시작.. 조선=가부장시대는 오해
[fn이사람] 정순구 역사비평사 대표 "조선시대는 보수적? 후기만 해당"

미투 운동이 들불처럼 사회 전반에 번지는 요즘, '지금이 조선시대냐'라는 말을 많이 한다. 여성에 대한 차별의 역사는 기원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역사가 깊지만, 우리는 흔히 조선시대를 가부장 권력이 가장 강력했던 시대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분야에서 대표적인 대중학술지 '역사비평'를 내고 있는 역사비평사의 정순구 대표(사진)는 "조선시대를 '고리타분한 시대'라고 생각하는 건 오해"라며 조선시대 소송을 다룬 책을 만들면서 알게 된 사실을 전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보수적인 시대인 조선은 대부분 후기에 해당한다는 게 정 대표의 설명이다.

정 대표는 "조신시대에서 남녀 간 지위 차이를 보여주는 한 가지 징표는 상속권을 포함한 경제적 권리인데, 조선 중기까지는 법적으로 딸과 아들을 구분하지 않고 균분 상속제를 실시했다"며 "심지어 이미 혼인한 딸에게도 재산을 골고루 나누어 줬다. 그 권리에 따른 의무로, 조상에 대한 제사도 자녀들이 돌아가며 지내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조선 후기에 이르러 국가 이념인 성리학이 더욱 강화되면서 대를 잇고 제사를 지내는 장자 위주로 상속권이 행사되면서 여성의 지위도 급격히 낮아지게 된 것"이라며 "그러니까 조선시대는 처음부터 끝까지 망국의 징후들만 가득한 ‘후진’ 시대만은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역사는 민주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힘”
최근 '한국사'가 수능에서 필수과목이 되는 등 역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그 어느 때 보다 높다. 대표적인 역사전문 출판사의 대표로서, 정순구 대표는 이를 어떻게 바라볼까.

정 대표는 "에드워드 핼릿 카(E. H. Carr)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는데,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역사는 현재와 미래와의 대화이기도 하다"며 "올바른 역사교육은 학생, 시민들이 다원화된 민주사회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힘을 준다"고 운을 뗐다.

그는 "그러려면 무엇보다 역사 해석을 정치세력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도록 맡겨둬서는 안 된다"며 "국정교과서 파동에서 확인했듯, 특정 정치집단이 역사를 독점하려고 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해서도 안 된다. 공공선이라는 가치에서 벗어나는 역사 정책은, 직접민주주의의 체험을 통해 역사의식과 정치의식이 높아진 시민들에게 용납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정 대표는 "학교에서도 옛날과 달리 암기 학습에서 벗어나 입체적으로 사고하고 논쟁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주 바람직한 방향"이라면서도 "다만, 역사에 대한 입체적 사고가 검증되지 않은 다양한 주장을 사실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역사공부의 목적은 ‘국익’ 아니라 지혜 기르는 것”
최근 역사학계에서는 대중화와 함께 ‘의사역사학(유사역사학)’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런 논란에 정순구 대표는 안타까운 시선을 보냈다.

정 대표는 “역사학에서 대중적인 지지를 얻기 쉬운 전략은 ‘우리가 과거에 아주 위대한 민족이었다는 식’의 민족주의에 편승하는 것”이라며 “오히려 이런 시각이 평생을 역사 연구에 바쳐온 학자들을 ‘식민사학자’로 전락시키고 역사정책에 개입되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그는 “유사역사학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중국도 일본도 역사왜곡을 하고 있는데 우리만 가만있어야 하느냐고 항변하기도 하지만, 그 논리대로라면 우리가 중국이나 일본의 역사 왜곡을 비판하고 항의할 수도 없게 된다”며 “역사를 공부하는 목적은 한두 가지로 설명할 수 없겠지만 분명한 것은 ‘국익’에 기여하려는 게 아니라 과거의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고 오늘날의 현실을 판단하여 더 나은 미래를 도모할 수 있는 안목과 지혜를 기르는 것”이라고 일침을 놨다.

대중학술지 '역사비평'이 대중과의 소통이 다소 부족하지 않냐는 지적에, 정 대표는 "대중적인 역사서가 꼭 쉬운 역사서를 의미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그는 "연구자들의 깊이 있는 역사서, 일반인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역사 연구의 전문 영역들을 끊임없이 대중에게로 이끌어내는 작업 자체도 대중화를 위한 시도"라며 "건강한 논쟁을 지속적으로 생산해내고 이끌어가는 것이 역시비평만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대중화의 길'이라고 정리했다.

fair@fnnews.com 한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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