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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최흥식 원장 사퇴, 관치가 낳은 비극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3.13 17:30

수정 2018.03.13 17:30

재임 내내 금융사와 충돌.. 시장 존중해야 권위 생겨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이 12일 물러났다. 지난해 9월 취임했으니 6개월 단명이다. 최 원장은 민간인 출신 첫 금감원장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결과는 좋지 않다. 직접적으론 본인이 연루된 채용비리 의혹이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깊숙이 들어가면 금융관치가 낳은 비극이다.

최 원장은 취임사에서 "감독당국의 권위와 위엄은 금융회사를 윽박지르는 것이 아니라 전문성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금감원의 영문 이름(FSS.Financial Supervisory Service)이 '서비스'로 끝난다는 점도 강조했다. 불행히도 지난 6개월 최 원장과 금감원이 보인 언행은 서비스와 거리가 멀다. 오히려 금융사를 윽박지른 기억만 남는다.

하나금융지주와 갈등이 대표적이다. 하나금융은 외국인 지분율이 74%를 웃도는 민간 금융사다. 지주 회장을 뽑는 일에 정부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 이는 마치 미국 정부가 JP모간체이스 회장으로 누가 뽑히든 상관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당연한 원칙이 한국에선 통하지 않는다. 금융당국은 하나금융 김정태 회장의 '셀프연임'을 줄기차게 문제 삼았다. 예전 같으면 감히 은행이 금감원에 맞서지 못했다. 하지만 세상이 달라졌다. 하나금융은 당국의 경고를 귓등으로 들었고, 김 회장의 3연임을 강행했다.

체면이 깎인 최 원장과 금감원은 채용비리로 반격했다. 지난 2월 초 5개 은행을 채용비리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 가운데 하나은행이 13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런 난타전 속에 최 원장 본인이 채용비리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언론 보도로 터져나왔다. 지난 2013년 최 원장이 하나금융지주 사장으로 있을 때 일이다. 지난 2월 금감원은 '새출발 결의대회'를 열었다. 이때 최 원장은 "괜한 오해를 살 수 있는 행위는 각별히 유의해 달라"고 당부했다. 최 원장 스스로 그 덫에 걸렸다.

현직 회장에게 절대 유리한 금융사 지배구조, 젊은이들을 절망케 하는 채용비리를 모른 척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지배구조는 손질하고 채용비리는 처벌해야 한다. 하지만 그게 이렇게 부산을 떨 일인가. 최 원장이 이끄는 금감원은 6개월 내내 민간 금융사를 감정적으로 대한다는 인상을 줬다. 정권이 바뀌었으니 자리도 내놓으라는 뜻이라면, 케케묵은 발상이 아닐 수 없다.

한국 금융의 후진성은 이번 일로 다시 확인됐다. 금융산업 발전과는 무관한 일로 또 한 차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했다. 권위와 권위주의는 다르다. 권위는 남이 인정할 때 온다.
구시렁대면 권위주의다. 은행들이 금감원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을 땐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관치를 버리고 전문가답게 굴어야 권위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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