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일반경제

[한은 이주열 총재 연임]美, 돌연 TPP 복귀 시사… 韓, 글로벌 통상무대서 소외되나

이보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3.02 17:59

수정 2018.03.02 18:06

美, 中 견제 위해 다시 가입 추진..中 주도 RECP 가입 집중한 한국 '고래싸움'에 희생양될 가능성도
미국이 돌연 일본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복귀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한국 정부를 당혹하게 하고 있다. 미국의 TPP 공식 탈퇴 선언 이후 우리 정부는 TPP 대책단을 해체하는 대신 중국이 주도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집중해왔다.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공세에 치이는 가운데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이 주도하는 TPP에 가입할 경우 한국만 미·중 무역전쟁 틈에 끼어 속수무책 당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TPP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 아직 정해진 것이 아닌 만큼 이에 휘둘리기보다 상황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부 장관은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미국상공회의소 주최 투자설명회에서 "(TPP 복귀와 관련해) 상당한 고위급 대화를 시작했다"며 "그것(TPP)은 현재 우선사항은 아니지만 대통령이 고려할 일"이라고 사실상 물밑협상이 시작됐음을 시사했다.

미국의 행보에 대해 전문가들은 중국을 압박하기 위한 카드로 TPP를 활용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TPP는 아시아·태평양을 둘러싼 지역을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는 넓은 범위의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이다. 일본, 캐나다, 호주 등 12개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영향력을 확대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의 오바마 정부가 주도해 추진됐다. 그러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TPP 탈퇴 선언 후 남은 11개국이 참여하고 있으며 포괄적.점진적 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으로 이름을 바꿔 이달 중 공식 서명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한국도 TPP 참여를 추진했지만 TPP 12개국 중 일본, 멕시코를 뺀 나머지 국가와 모두 이미 FTA를 체결한 상태로 애초 TPP 가입을 미뤘다. 뒤늦게 한국은 TPP 가입에 관심을 표명했지만 성사되진 못했다.

특히 한국은 지난해 미국이 TPP에서 발을 뺀 이후 TPP 대책단도 해체했다. TPP 대책단은 TPP 가입협상에 대비해 협정문 주요 내용과 회원국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출범한 범정부 차원의 조직이었다.

그 대신 우리 정부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중국과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이 주도한 RCEP에 공을 들여왔다. RCEP은 아세안 10개국 및 한·중·일, 호주, 뉴질랜드, 인도 총 16개국이 참여하는 아.태 지역 메가 FTA다.

산업통상자원부는 3일(현지시간) 싱가포르에서 열릴 RCEP 16개 참여국 장관급 회의에서도 "연내 RCEP 타결을 위한 의지를 강조하고, 참여국들에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절충안 도출을 위한 유연성 발휘를 촉구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장관회의는 지난해 11월 최초로 개최된 RCEP 정상회의에서 '2018년 타결' 지침이 내려진 후 올 들어 처음으로 열리는 장관회의다. 이번 회의에서는 RCEP 정상회의 이후 협상 진전 상황을 평가하고, 돌파구 마련이 필요한 서비스.규범 분야 등의 주요 쟁점을 논의할 예정이다.

산업부에 따르면 RCEP이 체결되면 명목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19조7600달러 규모에 해당되는 경제통합체가 형성된다. 이는 TPP(26조6000억달러 규모)와 EU(17조51000억달러 규모)에 버금가는 경제 규모다. RCEP 참여국에 지난 2012년 기준 우리의 1·2·3위 교역 대상지역인 중국, 아세안, 일본이 포함됐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TPP 복귀가 확정된 것은 아닌 만큼 섣부른 선택을 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미국이 TPP에 가입할 경우 미국시장을 놓고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있는 일본과의 경쟁에서 밀릴 수 있는 만큼 미국과 관계개선을 위한 TPP 가입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현재 TPP 가입을 위한 기준이 정확하게 공개된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TPP 회원국들을 설득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국이 중국에 대한 압박 카드로 TPP 가입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양자보다는 메가FTA 가입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우리도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면서 이에 동참할 필요성은 있어 보인다"고 밝혔다.

제현정 무역협회 통상지원단 박사는 "가장 먼저 TPP에서 탈퇴한 미국이 다시 들어간다고 해서 우리가 입장을 서둘러 결정할 필요는 없다"며 "미국이 복귀하더라도 아직 시간이 있고, 우리와 일본의 FTA 문제도 걸려 있기 때문에 가입하더라도 신중하게 검토한 뒤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미 협정이 세팅된 상태에서 우리가 들어간다면 기존 룰을 바꾸기 어려울 것인 만큼 가입과 관련한 우리의 득실을 충분히 먼저 따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spring@fnnews.com 이보미 기자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은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들이 참여하는 다자 간 자유무역협정(FTA)이다.
미국의 오바마 정부가 일본,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베트남,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페루, 칠레 등과 아·태 지역에서 영향력이 커지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주도해 추진했다.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은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10개국 및 한국 ,중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인도 총 16개국의 '관세장벽 철폐'를 목표로 하는 아·태 지역 FTA다.
중국이 주도하는 협정으로,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에 대항하는 성격이 강하다.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