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yes+ 컬처] 100년전에 이런 언니들이 있었어, 불평등을 말하고 금기에 맞섰던

박지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3.01 19:33

수정 2018.03.01 19:33

신여성에 초점 맞춘 전시
'신여성 도착하다'
'금하는 것을 금하라'
이유태 '인물일대 탐구'(1944년)
이유태 '인물일대 탐구'(1944년)

나혜석 '자화상' (1928년 추정)
나혜석 '자화상' (1928년 추정)

손응석 '산보복'(1940년)
손응석 '산보복'(1940년)

계절이 바뀌는 것을 바람의 변화를 통해 알 수 있듯, 지금 이 시대에는 새로운 변화를 위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새해 벽두부터 불어오기 시작한 '미투' 열풍은 이전과 다른 세상을 갈망하는 여성과 남성들의 바람을 담아내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예견한 것인지 서울과 수도권 주요 미술관에서는 이런 변화의 모습을 전시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진행중인 '신여성 도착하다'전과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여성미술 특별전 '금하는 것을 금하라'전을 통해 침묵하고 순종적이던 전근대적 여성의 모습을 탈피한 진취적인 모습의 여성상을 만날 수 있다.

■여성의 자유와 해방을 외친 '신여성 도착하다'展

'신여성'이라는 용어는 19세기 말 유럽과 미국에서 시작해 20세기 초 일본 및 기타 아시아 국가에서 사용됐다. 국가마다 개념의 정의에 차이가 있지만 여성에게 한정됐던 사회적, 제도적 불평등에 문제를 제기하고 자유와 해방을 추구한 근대 시기에 새롭게 변화한 여성상이라 할 수 있다.
조선의 경우, 근대 교육을 받고 교양을 쌓은 여성이 1890년대 이후 출현했으며 이 용어는 주요 언론 매체, 잡지 등에서 1910년대부터 쓰이기 시작해 1920년대 중반 이후 1930년대 말까지 빈번하게 사용됐다.

당시 조선의 여성들은 제국주의, 식민주의, 가부장제 그리고 동서양 문화의 충돌이라는 억압과 모순의 상황을 경험했다. 피식민인이자 여성으로서 조선의 '신여성'은 근대화의 주된 동력으로 작동할 수 없는 이중적 타자로 위치했고 '근대성'의 분열적인 함의를 드러내는 대표적인 아이콘이 됐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오는 4월 1일까지 진행되는 '신여성 도착하다'전은 개화기에서 일제강점기까지 근대 시각문화에 등장하는 '신여성'의 이미지를 통해 이제까지 남성 중심적 서사로 다둬졌던 우리나라 역사, 문화, 미술의 근대성을 여성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전시다. 이를 위해 회화, 조각, 자수, 사진, 영화, 대중가요, 잡지, 딱지본 등 500여점의 다양한 시청각 매체들이 입체적으로 소개된다. 특히 근대성의 가치를 실천하고자 한 새로운 주체로서의 신여성에 대한 다각적인 접근과 해석, 통시대적인 경험을 공유하고자 현대작가들이 신여성을 재해석한 신작들도 소개된다.

전시는 제1부 '신여성 언파레-드', 2부 '내가 그림이요 그림이 내가 되어:근대의 여성 미술가들', 3부 '그녀가 그들의 운명이다:5인의 신여성' 등 총 3부로 구성됐다. 1부는 주로 남성 예술가들이나 대중매체, 대중가요, 영화 등이 재현한 '신여성' 이미지를 통해 신여성에 대한 개념을 고찰한다. 여기서는 식민 체제하 근대성과 전근대성이 이념적, 도덕적, 사회적, 정치적 각축을 벌이는 틈새에서 당시 신여성을 향한 긴장과 갈등 양상이 어떠했는지 그대로 드러난다.

2부는 창조적 주체로서의 여성의 능력과 잠재력을 보여주는 여성 미술가들의 작품으로 구성돼 있다. 이 시기 여성 미술가들의 작품은 상당히 희귀한데, 국내에서 남성 작가들에게 사사한 정찬영, 이현옥 등과 기생 작가 김능해, 원금홍, 도쿄여자미술학교 출신인 나혜석, 이갑향, 나상윤, 박래현, 천경자 등의 작품을 선보인다.

3부는 남성 중심의 미술, 문학, 사회주의 운동, 대중문화 등 분야에서 선각자 역할을 한 다섯 명의 신여성 나혜석, 김명순, 주세죽, 최승희, 이난영을 조명한다. 당시 찬사보다는 지탄의 대상이었던 이들 신여성들은 사회 통념을 전복하는 파격과 도전으로 근대성을 젠더의 관점에서 다시 고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여기에 김소영, 김세진, 권혜원, 김도희, 조영주 등 현대 여성 작가들은 5인의 신여성을 오마주한 신작을 통해 당시 신여성들이 추구했던 이념과 실천의 의미를 현재의 관점에서 뒤돌아본다.

■나혜석에서 모티브 얻은 '금하는 것을 금하라'展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은 올해 타계 70주년을 맞은 나혜석(1894~1948)에 초점을 맞춘 특별기획전 '금하는 것을 금하라'전을 오는 6월 24일까지 진행한다.

여성의 권리와 지위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던 나혜석의 행보를 돌아보고 이 시대에 비춰 현재 우리 사회 속에서 여성이 어떻게 정의되고 있는지를 되새겨 보기 위해 기획된 이번 전시는 '여성'이라는 단어 속에 포함된 역할과 위치 등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들, '여성은 태어나는 것인가 만들어지는 것인가'라는 물음 등에서 출발한다.

시대를 앞서나간 나혜석의 발언과 주장들은 당시 사회에서 규정한 여성의 역할에 반하는 금기된 행동이었다. 그럼에도 문필가, 화가, 여성운동가 등 다양한 활동과 작품을 통해 여성의 권리 찾기에 앞장서 왔던 선구자적인 면모는 현재에도 그 가치를 잃지 않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조덕현, 박영숙, 손정은, 윤정미, 장지아, 정은영, 주황, 흑표범 작가가 참여해 여성과 관련한 금기와 고정관념에 대해 이야기한다.

전시는 두 섹션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먼저 1층 3전시실에서는 금기에 대해 저항했던 나혜석의 생애를 서사적으로 돌아보며 그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공간으로 조덕현 작가가 참여했다.
당시나 지금이나 여성에게 주어진 역할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금기에 가까운 행동으로 여성으로서 권리 찾기에 앞장섰던 나혜석의 용기 있는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공간이다. 2층 4, 5 전시실에서는 박영숙, 손정은, 윤정미, 장지아, 정은영, 주황, 흑표범 작가의 작품을 통해 나혜석 이후 현대미술에 나타난 여성의 역할과 금기, 저항 등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이번 전시는 '여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것이 또 다른 차별과 배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분법적 시선과 고정된 성 역할에 대한 사회적 통념에서 벗어나 진정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휴머니즘을 지향하는 여성주의를 공감할 수 있는 계기의 장으로 마련됐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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