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부동산일반

"며칠째 잠 못자요"... '집값 우울증' 호소하는 사람들

윤지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2.25 14:02

수정 2018.02.25 15:35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한 상가에 중개업소가 몰려있다.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한 상가에 중개업소가 몰려있다.

#. 서울 강동구에 거주하는 권모씨(55)는 한달 전부터 제대로 잠을 자본 적이 없다. 매일 컴퓨터 앞에 앉아 아파트 가격을 확인한다. 시내 길을 돌아다니면 온통 공인중개업소만 눈에 들어온다. 지난 12월에 매도한 한 아파트 때문이다.
직장문제로 서둘러 강동구로 집을 옮겨야 했던 권씨는 시세보다 1000만원 가량 비싸게 매물을 내놨다. 내놓은지 하루만에 매수인이 나타나 매매거래가 이뤄졌다. 하지만 매도한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해당 아파트는 2000만원 넘게 몸값이 올랐다. 권씨는 "(당시에는 시세보다 비싸게 호가를 불렀지만 결국은) 너무 싼 가격에 아파트를 매도했다"는 생각에 답답함을 떨칠 수 없다.


문재인 정부가 "집값을 잡겠다"며 각종 대책을 발표하고 나섰지만 '집값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너무 싼값에 집을 팔거나 비싸게 샀거나, 미리 집을 사지 않아 큰 손해를 입었다면서 자신을 자책하는 일종의 부동산 거래 시장에서 촉발된 우울증이다. 특이한 점은 매도자·매수자·무주택자 등에 가릴것 없이 전방위적으로 이 현상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불면증에 한숨만..'집값 우울증' 호소
25일 업계에 따르면 대형 포털사이트 부동산 카페에는 아파트 매매와 관련된 각종 불안감을 호소하는 글들이 하루에도 수십건씩 올라오고 있다.

한 회원은 "서울 성동구가 복덩이라고 해서 겨우 대출받아 아파트를 마련했는데, 최근 아파트값 상승률이 둔화됐다는 소식을 들으니 땅으로 꺼지는 듯한 느낌"이라고 했다.

최근 정부가 재건축 단지에 대한 추가 규제 대책을 발표하면서 서울 아파트 매매가 오름폭은 소폭 둔화된 상황이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2월 넷째주 서울 아파트 매매가 상승률은 0.40%로 2월 둘째주(0.53%)보다 소폭 하락했다.

■"좀 싸게 사려다 큰 시세차익 볼 기회 놓쳐"
상승폭이 둔화됐지만 매매가 상승세 기조는 유지되다보니 일부 매도자와 매수자들은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아이가 있다는 한 30대 여성은 "100만원 깎으려다 아예 매수기회 자체가 날아갔다"면서 "너무 고점이라 좀 깎아보려했는데, 100만원 때문에 수억원 차익을 볼 수 있었던 아파트를 날렸다고 생각하니까 밤마다 눈물만 나고 내 자신이 한심하다"고 말했다.

한 남성은 "매도하려는 집이 너무 올라 심란한 마음에 며칠간 끙끙대다 잔금을 치루기 전에 계약을 파기했다"면서 "매수자분께는 죄송하지만, 너무 밑지고 판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이 침기 힘들었다"면서 답답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일부 무주택자들은 "집이 없는 사람은 죄인이 돼버린 세상"이라면서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 정부가 투기세력 차단을 위해 서울 등 투기과열지구 전용면적85㎡이하에는 100% 가점제를 적용하고 대출문턱을 높이면서 청약당첨과 대출마저 어려워지자, 20~30대 젊은 연령층은 미리 '내 집 마련'을 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기도 했다. 한 30대 남성은 "대출 규제 전에 무리해서라도 집을 샀어야 했나 싶다. 아내와 아이한테 죄인이 된 느낌"이라고 괴로움을 드러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불면증과 우울증에 미쳐 죽을 것 같다. 집값 안정화 대책을 빨리 마련해 달라"는 청원글이 수십건 올라와있다.

■전문가 "집=투자개념 이라는 생각부터 버려야"
전문가들은 압축성장을 한 우리나라에서 '집'이 갖는 의미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압축성장 과정에서 집은 해외처럼 단순 '주거' 개념이 아닌 재산을 늘리는 하나의 '재테크' 수단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누군가 아파트값이 올라 수억원의 시세차익을 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왜 하지 못했나"라는 후회 속에 상대적 박탈감과 우울증으로 이어진다는 분석이다.

양윤 이화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에서 집은 살기 위한 공간 보다 재산 증식을 위한 공간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은데다, 나보다 나은 사람과 비교하고 자책하는 '상향 비교'가 이뤄지다보니 상대적 박탈감이 생기게 된 것"이라며 "원활한 소비·공급이 이뤄져야 하는데 각종 요인으로 매매거래마저 제한되다보니 심리적 저항이 일어나게 된 셈"이라고 설명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수백년간 경제발전을 해온 영국이나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수십년만에 압축성장을 해 부동산을 보는 관점이 다를 수 밖에 없다"면서 "집 등 부동산을 투자개념으로 생각하는 가운데 주택시장 상황이 급변하자 불안감도 커지게 된 것"이라고 했다.

jyyoun@fnnews.com 윤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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