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대통령·청와대

'대화카드'든 文대통령, '압박 패' 던진 트럼프...난감한 접점 찾기

조은효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2.24 06:01

수정 2018.02.24 12:54

文대통령, 북미대화 촉구 vs. 트럼프, 대북제재안 발표 
북한과의 대화, 겉으론 '이견'...방점 다르다고 접점까지 없었나
베일에 싸인 트럼프 대통령의 대화 구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딸 이방카 백악관 보좌관이 23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의 만찬에 참석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딸 이방카 백악관 보좌관이 23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의 만찬에 참석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미대화와 남북대화는 따로 갈 수 없다. 한.미 양국은 모처럼 잡은 이 기회를 살려나가야 한다"(문재인 대통령)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최대한의 압박전략'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하기 위한 자리다."(이방카 트럼프 보좌관)

한쪽은 모처럼만에 대화 분위기를 이어가자고 했고, 다른 한쪽은 북한에 대한 최대한의 압박기조를 이어가겠다고 했다. '대화'와 '압박'에 각자 달리 방점을 방점을 찍은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3일 오후 7시30부터 약 35분간 청와대 본관 백악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장녀인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고문 겸 보좌관(평창올림픽 폐회식 미국 대표단 단장)을 접견한 자리에서 이같은 대화를 주고 받았다.

청와대는 이방카가 들고온 트럼프 대통령의 정확한 메시지를 공개하진 않았다. 또 북미 대화를 촉구하는 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이방카의 답변이 무엇이었는지도 밝히지 않았다.

이방카 보좌관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대화에 진전된 입장을 취했는지는 '베일'에 싸여있다. 다만, 분명한 건 미국으로선 설령 대화를 한다고 해도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은 거둘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방카 보좌관이 문 대통령을 만난 직후 워싱턴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공화당 최대 후원단체인 보수정치행동위원회(CPAC)에서 "북한에 대한 사상 최대의 새로운 제재에 착수할 것"이란 연설을 하게 될 것이란 보도가 타전됐다. 북미간 탐색 기류가 전개되고 있지만 그것과 별개로 북한에 대한 최고의 압박기조를 이어가겠다는 뜻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고문 겸 보좌관이 23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만찬을 하며 대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고문 겸 보좌관이 23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만찬을 하며 대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文대통령 "남북대화, 북미대화 나란히 같이 가야"

북·미 대화에 대한 문 대통령의 입장은 명확하다.

"한반도의 비핵화를 위한 대화와 남북대화가 별도로 갈 수 없다. 두 대화가 나란히 함께 진전되야 하며 이를 위해 한·미 양국이 긴밀히 공조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
"북한의 핵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은 한국이 가장 강하다. 그러나 북한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한 한·미 양국의 (과거)노력은 성공하지 못했다. 한·미 양국은 모처럼 잡은 이 기회를 잘 살려나가야 한다. 나는 트럼프 대통령과 이 역사적 위업을 함께 달성하고 싶다." 청와대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문 대통령이 이방카 보좌관에게 이같이 말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화하더라도 압박은 포기 안할 듯
이에 대한 이방카 보좌관의 답변, 즉 트럼프 대통령의 속내는 '베일'에 싸여있다. 이유인 즉슨, 미국이 이 접견을 철저히 비공개에 부칠 것을 요구했기 때문으로 파악된다. 청와대가 일부 사후 공개한 이방카의 답변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해결을 위한 양국 정부의 최대한의 압박이 효과를 거뒀고, 한국의 대북제재를 위한 노력을 지지한다"는 정도다.

이방카 보좌관은 본관 백악실 접견에 이은 상춘재 만찬 회동에서 "한반도의 비핵화를 위한 '최대한의 압박전략(Maximum pressure campaign)에 대한 한·미의 의지를 재확인하기 위한 자리를 마련해줘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연신 '대북제재'를 강조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는 북.미 대화는 '비핵화', 즉 북한의 핵 포기를 전제로 한 대화이어야 하며, 이를 위해 한.미가 대북압박 공조체제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데 강조점을 찍었을 것으로 보인다.

액면 그대로라면 한.미가 '동상이몽'인 셈이다.

실제 미국 정부는 23일(현지시간) 사상 최대 규모의 해상 차단을 골자로 한 새 대북제재안을 발표했다. 북한의 제재 회피를 도운 중국 등 제3국까지 포함한 선박 28척과 27개 해운 및 무역업체, 개인 1명 등을 대북제재 리스트에 추가하는 내용이다.

청와대는 23일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방한 당시 미 백악관 전속 사진사가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진에 "우리가 이길 것이다"라는 자필메모와 함께 서명을 했다. 청와대 제공
청와대는 23일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방한 당시 미 백악관 전속 사진사가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진에 "우리가 이길 것이다"라는 자필메모와 함께 서명을 했다. 청와대 제공

다만, 이와 별개로 이방카 보좌관이 대북 대화 가능성을 열어놓는 발언을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방점은 다르지만, '접점' 마저 없진 않았을 것이란 얘기다.

이를 뒷받침하는 건 최근 트럼프 정부 외교안보라인 내에서 치열하게 주도권 다툼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경질설에 시달렸던 온건 매파(대화파)인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의 입지는 최근 제법 탄탄해진 반면, 북한에 대해 군사적 옵션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강경 매파 허버트 맥마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경질설이 부상하고 있는 상황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을 둘러싼 미국 내 대체적인 분위기가 여전히 북한을 불량국가 대하듯이 보고 있으나 트럼프 대통령 자체는 북한과의 대화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제재와 압박이 결국 대화를 끌어내기 위한 것이라면, 지금이 대화와 협상을 하기 위한 가장 좋은 시기"라고 강조했다.
한편, 비공개 접견엔 문 대통령과 이방카 보좌관 외에 우리 측에선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마크 내퍼 주한 미국 대사대리 4명 만이 참석했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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