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한달 55만원으로 사는 할머니와 손자.. 가난의 굴레 조손가정

최용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2.21 17:12

수정 2018.02.21 17:12

고령화.가정해체로 급증.. 월소득 100만원 미만 많아.. 아동 양육.교육환경 열악.. 체계적인 정부 지원 필요
인천 부평의 박연정씨(가명·여·58)의 전셋방 바닥은 차가웠다. 방 2칸에 드는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서다. 한 달 55만원이 박씨와 손자 등의 생활비다. 여성가족부 '2010 조손가정실태조사' 결과 조손가정 월평균 소득은 약 59만원이었다. 사진=최용준 기자
인천 부평의 박연정씨(가명·여·58)의 전셋방 바닥은 차가웠다. 방 2칸에 드는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서다.
한 달 55만원이 박씨와 손자 등의 생활비다. 여성가족부 '2010 조손가정실태조사' 결과 조손가정 월평균 소득은 약 59만원이었다. 사진=최용준 기자

7살 손자 상민이(가명)가 한글을 물어볼 때마다 박연정씨(가명.여.58)는 돋보기가 없다고 답한다. 박씨는 글자를 모른다. 고아원을 나온 뒤 남의 집 식모살이를 전전했다. 박씨는 부모가 누구인지, 오늘이 며칠인지, 자신이 몇 살인지도 모른다. 곁에 앉은 사회복지사가 나이를 일러줬다.

"저는 상민이 밖에 몰라요" 박씨는 손자만 안다. 미혼의 딸이 22살에 19살 남자와 만나 낳은 아이다. 상민이 돌이 지났을 때 딸은 집을 나갔다. 6년째 전화 한통 없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박씨는 매일 밤 검은 천장에 딸 얼굴을 그린다. 2년 전 남편마저 여의었다. "사글세는 절대 얻지 말라. 애기만 데리고 열심히 살라" 박씨 남편이 남긴 유언이다. 설 명절이 끝난 19일 오후 6시 인천 부평의 박씨 전셋방 바닥은 차가웠다. 방 2칸의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서다. 한 달 55만원이 이들의 소득이다. 65세 이하인 박씨는 근로능력이 인정돼 기초생활수급자 대상이 아니다. 손자에게 들어오는 수급비가 약 50만원. 박씨가 한 달간 파지를 주워 버는 5만원이 밥줄이다. 손자는 가끔 "엄마 언제 와요? 아빠가 먼저 와요?"라고 묻는다. 박씨는 "미국에서 돈을 많이 버느라 못 오고 있어. 돈 벌어 로봇 사주려한다"고 답한다.

박씨는 딸이 돈 때문에 가출했다고 생각한다. "그놈의 돈 때문에...저는 남의 집 청소할 때 돈 보이면 그 근처는 걸레질도 안 해요" 박씨는 내년 초등학교에 입학할 손자를 위해 한글을 배우려 한다. "담임 선생님 만나야할 텐데 걱정이 너무 커요" 그가 눈가를 훔쳤다.

■빈곤율, 일반가정에 비해 조손가정 9배↑

조손(祖孫)가정은 부모 없이 조부모 1명 또는 2명과 미성년 손자녀로만 이뤄진 가족형태다. 고령화, 가정해체로 대두되는 취약가정이다. 주로 이혼, 질병 등으로 부모가 떠난 후 남겨진 손자녀와 조부모가 함께 산다. 문제는 조손가정의 생계가 열악하고 가족 내 보호기능이 취약해 아이들이 심리적 문제를 겪을 수 있다는 점이다.

조손가정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찾기 힘들다. 여성가족부 '2010 조손가정실태조사' 이후 정기 조사되는 통계가 없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통계청 장래가구추계를 인용해 2015년 15만3000가구인 조손가정이 2035년 32만1000가구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조손가정은 가정해체 등 복합적인 요인이 맞물려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아동복지연구소 김은정 소장은 "조부모의 노화로 정신.신체적 건강악화, 경제적 부담, 세대 차이에서 오는 정서적 소통 등 다양한 문제를 안게 된다"며 "아동건강과 생활전반에 대한 지도가 어려워 아동 양육환경으로서 다문화, 한부모가족보다 더 취약한 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빈곤위험은 심각하다. 지난해 김예성 한국체육대 교수가 252개 조손가정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77.5%의 월 소득이 100만원 미만이었다. 여가부 2010년 조사에서는 월평균 약 59만원이었다. 일반가정에 비해 빈곤비율이 9배나 높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7 아동 빈곤의 특성과 청년기의 영향'에서 가구주가 남성일 때 아동이 5년 이상 장기빈곤을 겪는 비율은 4.7%에 그쳤다. 반면 가구주가 65세 이상 노인인 조손가정은 약 45%다. 모자 가정 장기빈곤율(41.6%) 보다 더 취약한 셈이다.

■조손가정 정책관심도 낮아

전문가들은 조손가정 빈곤해결을 위한 정부의 정책관심도가 낮다고 비판했다. 조손가정 정책은 복지부와 여성가족부가 주관한다. 복지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가정위탁보호제도가 있다. 2016년 12월 기준 전체 수급자 112만6510가구(163만 614명) 중 조손가구는 7621가구(1만3836명)다. 문제는 부양의무자 조건 때문에 비록 왕래가 없고 양육비를 제공하지 않는 자녀라 해도 부양의무자에 해당되면 경제적으로 취약한 조부모 세대가 생계비를 지원받기 어려운 현실이다. 복지부는 조손가정에 특례를 적용하겠다고 밝혔지만 '빈곤' 해결에 초점을 둔다면 조손가정은 여전히 사각지대다.

여가부는 한부모 아동양육비지원를 시행한다.
저소득 조손가정에 해당하면 양육비(월 13만원, 추가 5만원), 학용품비(연 5만 4100원)를 받는다. 그러나 올해 여가부 업무계획을 보면 조손가정 지원을 다문화가족이나 한부모가족과 같이 대표 사업으로는 진행하지 않는다.


김은정 소장은 "정부가 (조손가정을) 별도의 가족형태 및 중요한 지원 대상으로 간주하지 않은채 구체적인 사업계획이나 실태파악도 제자리걸음"이라고 진단했다.

junjun@fnnews.com 최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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