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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실 없는 소방과학 연구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1.30 19:37 수정 : 2018.01.30 19:37


지난해 겨울 초입쯤 충남 아산시에 위치해 있는 소방청 산하 소방과학연구실을 방문했다. 여느 시골과 같이 비포장도로 옆에 2층으로 지어진 작은 간이건물이 눈에 띄었다. 초라하다 못해 황량한 느낌의 이 건물이 4만명에 이르는 소방관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국가 연구소다. 연구인력은 12명에 1년 예산이 20억도 안된다.
더 기가막힌건 연구실에 실험실이 없어 건물 마당에서 실험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방과학연구실은 화재예방, 재난대응능력강화, 화재 분석 등 기초 소방과학기술을 연구하는 핵심 조직이다.우리나라가 재난 대응에 늘 실패할수 밖에 없는 구조적 이유다.

대형참사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소방관들이 화재 현장에서 재대로 진압을 할수있는 과학적 연구와 지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현 소방인력 구조는 현장지휘, 현장안전담당자, 화재진압 업무까지 1인 3역을 수행해야 한다. 3명이 하는 일을 혼자서 해야 한다. 그런데도 일부 정치권은 이를 반대하니 기가 찰 일이다.

최근 제천과 밀양에서 발생한 대형화재로 소방관의 사고 대응 능력의 부족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다. 남을 탓하는 것은 쉽다. 우리가 직시해야 할 것은 재난대응현장은 전쟁터라는 사실이다. 매우 복잡하고 특수한 상황으로 화재진압 중 갑작스런 돌풍에 연소 잔해물들이 날아들어 소방차가 전소되고 소방관들이 순직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실제 우리가 이론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재난 현장에서의 대응단계는 다른 단계(예방, 대비, 복구)와는 달리 업무의 집중도가 매우 높다. 즉 물이 천천히 흐르다가 재난이 발생하는 좁은 구간에서 급하게 흐르는 '오리피스' 같은 입체적인 구간이다. 당시 긴급한 전쟁터와 같은 상황을 무시하고 소방관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은 우물가에서 숭늉울 찾는격이다. 다시 말해 전쟁터 상황을 평상시 예방 복구처럼 인식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말이다.

예방대책 및 대응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연구를 수행하겠다고 관련 부처에서 연구소들도 만들어졌지만 정작 이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연구와 시스템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수익성이 없다는게 주된 이유다. 이게 우리의 소방정책의 민낮이다. 막상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의 엉터리 장비나 도구를 생각해보라. 우주복과 같은 화학보호복을 입고, 긴장에 의한 과호흡상태가 될 수 있거나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의 안경이 뿌옇게 변색되는 등의 사례는 차고 넘친다.

소방과학분야의 연구개발은 전세계적으로 중요한 이슈다.

기술 개발에 투입되는 인원은 중국은 무려 840명, 미국 150명, 캐나다 130명, 영국 120명, 일본 56명에 달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소방과학연구실에는 단 12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연구인력은 파견 직원들을 제외하면 극히 소수에 그친다. 작은 연구실 수준에 불과한 현재의 소방과학연구실로는 소방장비개발, 화재사고 분석.감시, 재해연구 등 필수적인 분야의 업무를 수행하기도 벅차다.

다행히 지난 29일 국민의당 이용호 의원이 소방과학연구실을 소방과학연구소로 승격하는 내용의 '소방기본법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해 주목받고 있다. 늦은 감은 있지만 소방관들의 안전을 위한 중요한 전기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이번 법안을 계기로 충분한 인력과 재정을 확보해 소방과학 연구의 새 지평이 열리길 기대해본다.

ktitk@fnnews.com 김태경 정책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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