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주영 칼럼]

부동산 대책이 헛도는 이유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1.22 16:55 수정 : 2018.01.22 16:55

특목고 폐지가 8학군 불 붙여.. 힘으로 억누르다 반발력 키워.. 시장원리 안에서 해법 찾아야



"부동산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가 와요. 그때마다 집값이 1000만~2000만원씩 뛰네요. 저는 요즘 가만히 앉아서 일주일에 1억원씩 벌고 있어요." 지난해 말 만난 어느 후배의 얘기다. 그는 재건축이 성사되면서 '로또 아파트'로 불리는 서울 강남의 어느 아파트에서 20년 넘게 살았다. 인근의 부동산중개업소들에 따르면 부유층 학부모들이 강남 8학군으로 대이동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업소마다 전국에서 하루 수십통씩 전화가 걸려온다고 한다.
가격은 얼마라도 좋으니 8학군에 아파트를 잡아달라는 주문이다.

벌집을 잘못 건드렸다.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이 지난해 6월 특목고.자사고 폐지 방침을 밝혔을 때만 해도 이런 결과가 오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특목고.자사고 진학 길이 막힌 부유층 학부모들이 너도나도 8학군으로 몰려들면서 강남 집값이 치솟고 있다. 그 불길이 재건축 요인과 맞물리며 용산, 목동, 과천, 분당 등지로 번지는 중이다.

정부는 점점 강도 높은 대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시장에는 전혀 약발이 들지 않는다. 내놓는 대책마다 순기능은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고 역기능은 예상보다 강하다. 다주택자 중과세가 대표적인 예다. 당국은 4월까지 시한을 주면 다주택자들이 집을 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다. 집을 팔기는커녕 팔려던 집도 보류하고 있다. 한 주에 1억원씩이나 값이 오르는데 어느 누가 집을 팔겠는가.

정부는 이제 비장의 무기인 종합부동산세 카드를 꺼내 일전을 불사할 채비다. 이러다 참여정부 실패를 되풀이하는 건 아닐까. 참여정부는 2005년 고가 아파트에 무거운 세금을 물리며 투기와의 전쟁에 나섰다. 결과는 참패였다. 이듬해 집값은 폭등했고 민심도 떠나갔다. 세금폭탄에 부유층은 물론이고 중산층까지 등을 돌렸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일한 문재인 대통령은 그 과정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했던 이유는 뭘까.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아직까지 성공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나는 근본원인이 정책당국자들이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시장을 휘어잡을 수 있다는 생각 말이다.

어느 누구도 시장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다. 경기도 교육감의 발언이 강남 집값에 도화선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래서 시장을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정부가 중요한 정책을 결정할 때는 시장원리를 존중하고 겸손해야 하는 법이다. 그럼에도 마치 시장을 다 아는 것처럼 예단하고 시장과 싸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정책은 필패다. 시장만능주의도 경계해야 하지만 시장을 경시하는 풍토도 고쳐야 한다.

암투병 중인 환자가 죽는 것은 암 자체보다는 암을 고치기 위해 투여하는 항암제 때문인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항암제를 투여하면 암세포만 죽는 것이 아니라 정상세포도 함께 죽는다. 이 과정에서 환자가 체력소모를 견디지 못해 사망에 이른다. 부동산 대책도 마찬가지다. 대책이 남발되면 투기꾼만 잡는 것이 아니라 선의의 거래자까지 함께 잡게 된다. 투기를 방치해서는 안되지만 투기억제 대책을 남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책이 잦으면 내성이 커지고 시장이 위축돼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대책 횟수를 줄이는 대신 내용을 최대한 정교하게 가다듬어야 한다. 시장원리 틀 안에서 해법을 찾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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