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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최저임금의 과잉 정치화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1.18 17:05

수정 2018.01.18 17:05

[여의나루] 최저임금의 과잉 정치화

정부정책이 바로 되려면 목적이 타당하고 방법이 적정해야 하며 집행 이후 정책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타당한 정책이라도 정치와 정부의 과욕이 끼이면 정책의 본래 목적을 그르칠 위험성이 높다. 여기서 '과욕'이라 함은 대부분 표를 의식한 선심성 정책을 말한다. 이러한 과욕의 유혹은 진보나 보수가 따로 없는 것이 우리 정치의 현실이다. 현실보다는 이상, 과정의 합리성보다는 결과의 가치성을 더 중히 여기는 경향이 있는 진보 세력이 오히려 더한 경우가 많다. 시장의 실패를 교정하기 위한 정책이 정부의 과다한 개입으로 인해 오히려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더 저해하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고용안정지원금'이라고 명명하여 새해부터 시행될 예정인 최저임금 지원금 제도가 바로 그런 경우다. 정부는 최저임금은 사상 최대치로 올리되 최대 부담을 안게 된 영세사업자에게 대폭 현금성 지원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고용안정'이라는 명칭 자체가 아이러니하다. 청년 아르바이트생과 영세민의 임금소득 향상을 위해 추진한 최저임금 인상이 바로 그들이 주로 취업해 있는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는 '최저임금의 역습'을 우려해서 지은 명칭인 것 같다.

어떤 정부도 기업이나 사업자를 대상으로 직접, 그것도 임금을 현금으로 지원하는 정책은 현대 국가에서는 유례가 없고 설령 있더라도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불을 보듯 뻔한 지원받는 대상들의 도덕적 해이,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 필히 수반되는 과다한 행정비용, 정부의 인위적 개입으로 인한 시장교란 등으로 정책의 목표가치보다 부정적 파급효과가 오히려 더 크기 때문이다. 향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한국 경제보고서에서 경제학의 상식을 뛰어넘는 아주 특이한 정부 정책사례로 아마 반드시 다루게 될 사안이다.

인상 폭의 크기와 적정성은 차치하고라도 지원방식을 사회보험료 지원방식 등 보다 적정하고 효율적으로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특히 영세사업장과 임시직 서비스 인력들은 국민연금, 고용보험 등 고용주와 근로자가 함께 부담하는 사회보험 사각지대가 크기 때문이다. 이런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해 '두루누리' 사업이라는 명칭하에 정부는 매년 수천억원의 예산을 쏟아붓고 있다. 따라서 최저임금 지원을 사회보험료 지원방식으로 했다면 최저임금 인상과 사회보험 사각지대 해소라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타당하지도 않고 효율적이지도 않은 현금지원 방식을 굳이 택한 이유를 묻고 싶다. 짐작건대 현금지원 방식이 과다한 최저임금 인상에 불만인 영세사업자에게 더 직접적이고 피부에 와닿을 것이라는 정치적 판단을 했을 것이다. 결국 정치공약인 최저임금 1만원 인상도 지키고 싶고, 영세사업자의 표도 잃고 싶지 않은 것이다.

정말 영세사업자들이 걱정되고 본의 아니게 저임금계층의 고용불안이 걱정된다면 최저임금 인상을 절대액 기준이 아닌 적정 인상률로 정하고, 인상의 복리효과를 기다리는 것이 정부가 했어야 할 일이다. 최저임금 1만원이라는 정치적 구호를 합리적이고 지속가능한 정책으로 전환했어야 한다. 표를 얻기 위한 퍼주기식 무리한 정책들이 타당, 적정, 효율성이라는 여과장치 없이 여러 분야에서 경쟁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느낌이다. 정치의 과잉, 정책의 빈곤이다.
그러나 정부 초기다. 서두를 일 없다.
지금이라도 중요하고 파급효과가 큰 공약이나 정책들은 면밀하게 재검토해 국민의 세금이 정치적 선전을 위해 쓰이기보다 국민에게 실효적 혜택을 주는 바른 정책을 추진하는 데 쓰이기를 바란다.

방하남 국민대학교 석좌교수·전 고용노동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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