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구본영 칼럼] 남북 '평창 대화' 오버하지 말자

구본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1.17 17:08

수정 2018.01.17 17:08

北 선수·예술단 환대하되 남남갈등 소지 차단 필요
정치와 스포츠 분리해야
[구본영 칼럼] 남북 '평창 대화' 오버하지 말자

평창올림픽이 다가오면서 1988년 서울올림픽이 생각난다. 병아리 스포츠 기자로서 개막식을 지켜봤다. 베를린 마라톤 영웅 손기정옹이 성화를 들고 잠실주경기장으로 들어섰을 때 숨이 멎는 듯했다. 현장의 감동이 지금도 선연하다.

서울올림픽은 변방의 대한민국이 미디어 학자 마셜 맥루언이 말한 '지구촌'의 주역으로 각인되는 계기였다. 참가국이 역대 최다(160개국)라서만이 아니다.
경기 운영뿐만 아니라 관광 인프라 등 여러 분야에서 '글로벌 표준'을 체화하면서다. 차량 2부제 운행 등에 일사불란하게 동참한 성숙한 시민의식에 세계 언론들도 찬탄했었다.

2전3기 끝에 유치한 평창올림픽이다. 그런데도 30년 전 서울올림픽에 비해 열기가 시들하다. 그때보다 국민과 정부의 일체감도 느슨해 보여 안타깝다. 단지 인기가 덜한 겨울올림픽이라서 더 썰렁한 걸까. 아니다. 복합적 요인이 있겠지만,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이 가장 큰 냉매로 작용한다고 봐야 하겠다.

그래서 북한이 평창에 대규모 참가단을 보낸다니 일단 다행이다. 올림픽이 끝날 때까지는 도발을 자제할 게 아닌가. '평화올림픽' 분위기로 국내외 관람객이 늘어나는 붐업 효과도 기대할 만하다. 그러나 북한의 참가가 평창의 성공을 보증하진 않는다. 북한이 집요하게 방해했지만 대성공을 거둔 서울올림픽이 역설적 방증이다. 당시 북한은 그럴 의지도 없으면서 남북 공동개최를 주장하며 바람을 잡기도 했다. 그것도 모자라 올림픽 한 해 전 대한항공 858기를 폭파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렇다면 북한 선수단을 반갑게 맞이하되 "우리 민족끼리"라는 감성적 구호에 휘둘려서도 안 된다. 북한 참가단의 체류비 지원은 대승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라야 한다. 주최국인 정부가 태극기를 쉽게 포기하고 한반도기를 들거나 남북 단일팀 구성에 집착하는 등 정치적으로 오버할 까닭도 없다.

분단국의 하계올림픽 단일팀은 1956년 동·서독이 첫 선례를 남겼다. 호주 멜버른올림픽이 효시였다. 양독 선수 가운데 우승자가 나오면 시상식장에선 양측 국가 대신 베토벤 교향곡 제9번 중 '환희의 송가'가 울려 퍼졌다. 양독은 이후 1964년 도쿄올림픽까지 2차례 더 단일팀을 만들었지만, 분단의 골은 더 깊어졌다. 훈련장과 경기장에서 동독 선수단이 걸핏하면 정치선전을 일삼으면서다. 외려 양독이 따로 선의의 메달 경쟁을 벌인 1970~1980년대 올림픽을 거친 후 통독이 이뤄졌으니 아이러니다.

그런 맥락에서 북한이 선수보다 월등히 많은 예술단(140명)과 응원단을 보낸다는 게 마음엔 걸린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인 참가단에 드리운 정치적 복선이 읽히면서다. 물론 북한의 '삼지연 관현악단'이 '예술'이 아니라 '체제선전 기술'을 부린다고 해서 무장해제될 만큼 우리 사회가 허약하진 않다고 본다.

다만 개최국으로서 '평창 이후'도 생각해야 한다. 잔칫집 손님은 그저 즐기면 된다. 하지만 축제 무대 아래 나뒹굴 쓰레기를 치우는 건 결국 주인 몫이다. 북한 예술단과 '미녀응원단'을 환대하되 이들의 교묘한 체제 선전활동으로 불거질 남남갈등이란 후유증은 미리 차단해야 할 이유다. 더욱이 북한이 핵을 포기하려고 평창을 택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혹여 이를 망각하고 대북제재의 그물을 느슨하게 했다 큰코다쳐서도 곤란하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헌장이 가리키듯 정치와 스포츠는 분리하는 게 옳다.
과도한 '평창의 정치화'를 경계할 시점이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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