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조지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2.11 17:07

수정 2017.12.11 17:07

[기자수첩]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연말 인사철이다. 사무실에선 인사 발표에 희비가 교차한다. 조용히 기쁨을 나누거나 고통스럽지만 이별을 준비한다. 회사는 떠나는 이들을 위해 나름의 배려를 보여준다. 공식적인 인사 발표를 목요일이나 금요일에 실시한다. 토요일에 발표하는 곳도 있다.
그 주말은 정리의 시간이다. 회사 입장에선 인사가 주목받지 않기를 바라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땐 오히려 다른 이슈에 묻히길 원한다.

최대한 티 내지 않기. 조용히 떠나보내기. 대다수 회사들이 연말 인사에서 보여주는 이별에 대한 예의다. 이유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생략한다. 있어도 말하길 꺼린다. 수십년 몸담았던 회사를 떠나야 하는 임원에겐 그나마 각별히 신경을 쓴다. 이들이 떠나는 이유를 묻는 것은 실례로 치부된다.

그런데 해고 사유에 대해 '긴말'하지 않는 것이 정말 예의일까. 이유를 분명하게 전하지 않는 게 더 예의에 어긋날 수 있다.

김선주 칼럼니스트는 "직업에 걸었던 열정도 사랑"이라고 정의한다('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남녀 사이의 이별에서도 가장 먹먹한 것 중 하나가 이유를 헤아릴 수 없을 때다. 모르면 오해를 낳는다. 견뎌내야 하는 고통의 크기가 더 커진다. 이별의 이유에 대해 설명하는 게 구차하거나 잔인한 짓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통의 크기는 줄일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해고에 대해 침묵하는 관행이 약자에게 적용될 때다. 악용된다. 몇몇 계약직 직원에게 납득할 수 없는 해고 통보가 당일 전달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일어나고 있는 엄연한 현실이다. 실업급여를 볼모로 문제 제기를 하지 않겠다는 각서 쓰기를 강요한다. 예의가 적폐로 변질된다.

회사의 인사, 특히 해고에 있어 새로운 예의를 지켜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해고 사유를 공개적으로 분명히 설명하자. 그래야 억울한 해고를 막을 수 있는 첫 단추를 끼울 수 있다. 회사도 떳떳해진다. 그리고 부끄러워하지 말자. 사람들은 떨어지는 별을 바라보며 욕은커녕 소원을 빈다.

소설가 최인훈은 '광장'에서 "사람은 한 번은 진다.
다만 얼마나 천하게 지느냐, 얼마나 갸륵하게 지느냐가 갈림길"이라고 썼다. 장하게 지면 다음번엔 이길 수도 있다.
이별의 고통을 견뎌내야 다음 사랑을 한다.

gmin@fnnews.com 조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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