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yes+ 이 전시] 허구영 '낭만정원'展.. 꽃들에 파묻힌 '꽃 그림'

박지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2.07 20:18

수정 2017.12.07 20:18

"본질로 돌아가고 싶었다"
허구영 작가
허구영 작가

부처꽃(loosestrife), 2017
부처꽃(loosestrife), 2017

"꽃, 식물이라는 소재에 대해 과거엔 '낡은 모티브'라는 고정관념이 있었어요. 그래서 일부러 배제해왔던 소재였죠. 그런데 작업을 20년 넘게 해오다 보니 어느날 이 꽃이 새롭게 다가오더라고요."

멀리 궁궐이 내다보이는 서울 북촌 언덕 위 갤러리. 문을 열고 들어서니 갑자기 수풀 속에 들어온 느낌이다. 갤러리 공간 가득 채운 화분 위로 올라온 녹색 식물들. 찬바람이 몰아치는 계절을 무색하게 만드는 온실과 같은 공간이 됐다. 도대체 그림은 어디에 있는가 살펴보니 그 화분의 숲 사이를 헤쳐야 간간이 보인다. 캔버스에도 꽃이 활짝 피었다. 허구영 작가가 서울 삼청동 누크갤러리에서 오는 17일까지 진행하는 '낭만정원'전이다.

이번 전시는 관람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그림보다는 갤러리를 가득 채운 화분이 더 이목을 끈다. 굳이 찾아보려 하지 않는다면 그림이 있었는지 모르고 지나칠 판이다. 그가 지금껏 해오던 작품과는 다른 세계. 회화와는 먼 영역에서 작업해온 그가 유화 작품을 그리게 된 건 "본질로 돌아가고 싶어서"란다. "늘 학교에서 작업을 해오다 지난 여름 화원을 차린 아는 후배를 만나러 대전에 내려갔어요. 그런데 화원에 들어서니까 너무 좋은거예요. 그 안에 있으니 치유가 되는 것 같은 느낌도 있고 해서 무작정 그 화원에 눌러앉았네요. 화원이 작업실이 되고 동시에 전시장이 된거죠. 매일 보는 풀인데 어느 순간 새롭게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이번 전시를 위해 대전의 그 화원에 있던 화분들을 수백개 가지고 와서 갤러리 곳곳을 채웠다. 이를 통해 작품을 그릴 당시 자신이 작업했던 공간의 모습을 흡사하게 재현했다. 화분의 꽃이 피고 지는 과정, 생기 넘치다 시드는 과정마저 이번 전시의 일부로 포함시켰다고 그는 말했다.

그간 스스로 절제하며 지나친 낭만주의적 감각을 경계해왔던 허구영은 낭만정원에서 그림을 그리다 어느 순간 그러한 경계심이 자신의 마음을 오히려 누르고 있음을 깨달았다. 항상 '새로운 것' '새로운 작업 방식으로''새로운 화두'를 던져야 한다고 고민해왔던 것들이 오히려 식상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원초적인 욕구, 그리기에 대한 욕망이 다시 살아난거죠." 압박에서 벗어나 마음을 비우고 한자리에서 풀들이 피고 지는 걸 무작정 그려온 그의 그림들은 마치 모네의 연작 작업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갤러리 2층 창밖으로 보이는 산 풍경과 그의 꽃그림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나이가 들고 삶에서 어떤 것들이 쌓이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정말 본질,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그게 회화였던 것 같아요. 기본으로 회귀한 느낌입니다."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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