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특별기고

[특별기고] 남한산성과 감정평가 업계

김관웅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1.28 17:10

수정 2017.11.28 17:10

[특별기고] 남한산성과 감정평가 업계

얼마전 영화 '남한산성'은 개봉과 동시에 정치인들이 지금 우리나라의 시국과 관련해 아전인수식 말들을 쏟아내면서 많은 화제를 뿌렸다.

청의 황제 홍타이지는 "조선이 항복해 오지 않으면 공격하겠다"고 일찌감치 공언했다. 홍타이지의 이 같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유신(儒臣)들은 논쟁만 일삼고 아무런 준비를 하지 못했다. 결국 조선은 1636년 인조 14년 청나라 대군의 공격을 받고 임금과 조정은 남한산성으로 숨어든다. 절대적인 군사적 열세 속에서도 대신들의 의견은 첨예하게 맞선다. 순간의 치욕을 견디고 나라와 백성을 지켜야 한다는 이조판서 최명길과 청의 공격에 끝까지 맞서 싸워 대의를 지켜야 한다는 예조판서 김상헌. 그 사이에서 인조의 무능한 번민은 깊어만 가고 나라는 황폐화되고 백성들의 삶은 아비규환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결국 59일 만에 인조는 산성 밖으로 걸어나와 홍타이지에게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로 신하의 예를 하였다. 임금과 조정의 잘못된 판단으로 무고한 조선의 백성들은 엄청난 박해를 당한 셈이다.

남한산성에 얽힌 역사를 되짚다 보면 요즘 우리 감정평가사 업계와 참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감정평가사들은 한국감정원이라는 기관과 꽤나 여러해 동안 다퉈왔다. 토지 평가와 관련된 자격은 1973년 토지평가사, 1977년 공인감정사로 이원화돼 있었다. 이후 1989년 '지가공시 및 감정평가에 관한 법률'로 두 자격은 통폐합돼 감정평가사로 일원화됐다. 공정경쟁체제를 기조로 정부출자기관인 한국감정원은 감정평가법인과 별반 다르지 않게 되면서 지위가 크게 흔들렸고 새 정부 출범 때마다 민영화 대상기관 도마에 오르곤 했다.

위기에 쌓인 한국감정원은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방법을 모색하였다. 그러던 중 한국감정원법을 포함한 새로운 법률을 만들어 냈다. 2016년 9월1일자로 시행된 소위 3법으로 불리는 그 법률을 감정평가사들은 지금까지도 반대하고 있다. 3법은 기존의 '부동산 가격공시 및 감정평가에 관한 법률'을 '감정평가 및 감정평가사에 관한 법률' '부동산 가격 공시법' '한국감정원법' 으로 분리해 감정평가업무를 민간에 이양하고, 감정평가사와 감정원의 갈등을 종식시킨다는 명분을 가지고 있었으나 실제 내용을 들여다보면 평가사만이 할 수 있는 고유업무를 평가사가 아닌 사람들도 할 수 있도록 허물어 평가사를 관리감독하는 기능까지 감정원 일반 직원들에게 부여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치는 동안 감정평가사들은 인조의 조정과 남한산성에서 출구 없는 말들이 되풀이되는 것처럼 갑론을박만 벌였다. 이 기간 중 감정평가사 협회장이 두번이나 바뀌었다.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시간만 허비했다. 국가가 부여한 전문자격자인 감정평가사를 감정원의 일반 직원들이 대신하도록 만들어주고 만 꼴이다. 국가가 전문자격자를 두는 이유는 국민들에게 좀 더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전문자격자인 감정평가사 자격제도가 허물어지는 것을 보면서 국민들이 받아야 할 질 높은 서비스 권한을 박탈당했음은 물론 감정평가사들이 고유업무를 빼앗긴 허탈함과 자괴감까지 든다.

남한산성을 거닐며 문득 생각이 들었다.
감정평가업계도 여러 자격자들과 힘겨운 경쟁을 해나가야 할 지금 업계의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면 영화 '남한산성'에서 그려진 조선의 신세처럼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순구 대화감정평가법인 감정평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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