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yes+ Culture] "사람은 걸을 때 가장 자연스러워, 움직이는 순간의 아름다움 담았죠"

박지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1.23 20:34

수정 2017.11.23 20:34

英현대미술 거장 '줄리안 오피' 내년 1월 21일까지 대규모 개인전
대표작 '워킹 피플' 시리즈 비룻 3D 프린팅 초상.설치 등 80점 전시
도시 이미지 담은 8m 조각 '타워2' '걷는 사람 LED 패널' 등 신작 선봬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외벽에 설치된 '피플'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외벽에 설치된 '피플'

한국을 소재로 한 '워킹 인 사당동 인 더 레인'
한국을 소재로 한 '워킹 인 사당동 인 더 레인'

영국의 'yBa(young British artists)'그룹은 전세계 현대미술을 이끌어가는 최전선이다. 1980년대 말 이후 런던 동쪽 뉴크로스 지역의 골드스미스 대학 출신의 젊은 미술가들을 주축으로 시작된 yBa에는 '생존하는 가장 비싼 작가'로 꼽히는 데미안 허스트 등 현대미술의 주역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이들은 영국의 현대미술 부흥을 이끌고 런던을 현대미술의 새로운 메카로 만들었다. 현대미술을 이끄는 주요 작가 중 한 사람인 줄리안 오피(59) 역시 yBa의 멤버다. 지난 2009년 서울역 맞은편에 위치한 서울스퀘어(옛 대우센터빌딩) 외벽에 '걷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거대한 미디어 작품을 선보여 우리에게도 친숙한 그가 경기도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진행하고 있다. 내년 1월 21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지금껏 국내에서 열린 그의 개인전 중 최대 규모다.
이번 전시에는 그의 대표작인 '워킹 피플' 시리즈를 비롯해 3D 프린팅 초상, 태피스트리, 영상, 설치 등 80여점이 나왔다. 특히 머물렀던 도시 이미지의 기억을 담아낸 8m 높이의 5개짜리 대규모 조각 작품 '타워2'와 미술관 전면 유리에 설치되는 걸어가는 사람 이미지 LED 패널 등의 신작도 선보였다.

―서울뿐 아니라 런던, 멜버른 등 전세계 도시의 걷는 사람들을 주제로 작업을 꾸준히 해왔는데 그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람'을 떠올리면 멈춰있는 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린다. 하지만 사람은 멈춰있기 보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존재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걷기'라고 생각했다. 사람이 걸을 때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가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자연스러운 상태를 작품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사람이 걸을 때 사실 얼굴의 모습보다는 걸음걸이, 사람이 입고 있는 옷 등이 더 크게 부각되기 때문에 나는 얼굴을 잘 그리지 않는다. 사실 걷는 사람은 미술사적으로도 오래된 소재다. 이집트나 그리스, 로마시대의 벽화를 보면 다 걷는 모습을 다루고 있지 않나. 걷는 모습 자체가 흥미롭고 역동적인 느낌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걷는 것도 다양한데 나의 경우엔 한쪽 방향을 향해 걷는 모습을 다룬다. 그것이 더 강력한 이미지를 구축하기 때문이다. 또 심플해야 작품의 이미지가 더욱 파워풀해진다.

2017년 신작 '타워2'
2017년 신작 '타워2'

자신의 작품 앞에 선 줄리안 오피
자신의 작품 앞에 선 줄리안 오피


―각 도시의 걷는 사람들의 느낌이 다르더라. 한국인들의 걷는 모습이나 스타일은 어땠나.

▲국적에 따라 무엇이 다를까 굳이 구분짓고 보려하지는 않는다. 같은 나라의 사람들이어도 쇼핑가냐, 해변이냐, 도시냐, 시골이냐에 따라 분위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최근에 호주에서 작업한 작품은 무더운 날 해변의 사람들의 걷는 모습을 다뤘기 때문에 작품의 느낌이 다르다. 몸에 문신이 그려진 사람들이 반바지의 편안한 상태로 비치 모자를 쓰고 어슬렁거리는 모습을 표현할 때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다. 이렇게 모델처럼 아름다운 사람만을 다루는 게 아니라 걸음걸이나 존재감이나 그 움직이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것이 내 작품의 목표다. 하지만 굳이 서울에서 한 작업에 대해 얘기하자면 주로 쇼핑가에서 찍었기 때문에 패셔너블한 모습들이 많이 반영된 것 같다. 옆트임이 있는 붉은 원피스를 입은 사람의 이미지가 와닿았다.

―이번 전시에서 '워킹 피플' 외 풍경과 동물들의 이미지 작업도 다수 선보였다.

▲초상이 일대일로 사람을 만나고 그림 속 사람이 다가오게끔 하는 것이라면 풍경은 작품 안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초상화를 그릴 때는 작품 속에서 초상의 인물과 그리는 사람, 그리고 작품이 완성된 후 이를 보는 관람객 간의 삼각관계가 존재하고 얼굴을 마주 봄으로서 오는 대치관계가 있지만 걷는 사람은 작가를 바라보거나 신경쓰지 않기에 작품에서도 관람객의 시선과 마주치지 않아 긴장의 상태가 다르다. 하지만 풍경 속 동물은 사람을 더욱 쉽게 몰입하게 만드는 매개가 된다. 일본의 풍경화 속 작은 새들이나 골목길을 걸어가는 사람이나 동물 등에 이입해 풍경에 몰입할 수 있게 되듯 동물을 이용하기도 한다. 이번에 작품 80점을 전시하면서 사람의 모습만 다루면 힘들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일부 공간에 소리 위주로 소통하는 공간을 구성하기도 하고 풍경을 다루기도 했다.

―같은 '워킹 피플' 작품이지만 어떤 것은 타일, 영상, 3D 프린팅으로 만든 작품도 있다. 다양한 매체로 작업을 하는 이유는.

▲앞서 말했듯 다양한 소재도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다. 그래서 오래된 소재부터 신소재까지 새로운 것들의 물성을 시도해본다. 마치 요리를 할 때 여러 재료와 물과 열 등을 가해 다채로운 음식이 나오듯 예술 작품도 금이나 플라스틱이나 다양한 소재를 통해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다. 3D 프린팅 작업은 조각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했다. 늘 평면적인 것만 하기엔 답답하고 불편한 느낌이 있었고 벽 위에 걸린 부조의 뒷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고민하다 이 방법을 생각하게 됐다. 전통적인 조각의 방식은 내겐 느리게 느껴졌다.

―이렇게 다채로운 작업의 영감은 어디서 얻나.

▲딱 꼬집어 말하기 어렵다. 그저 무언가를 보다가 순간적으로 영감을 받고 그땐 가만히 있지 못하고 작업을 해야 한다. 이 순간이 지나가기 전에 말이다. 쇼핑을 하다 쇼핑몰에 걸어다니는 사람들이 춤을 추는 무용수 같이 보일 때가 있고, 해변에 있는데 새가 날아다니는 것을 보다가도, 때론 소리만으로도 영감을 받는다. 그러면 그 아이디어를 스튜디오로 가져온다.
12명의 스태프들과 함께 여러 시도를 한다. 애들이 장난치듯 표현 방법과 색상, 소재를 연구해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식으로 작업한다.
세상의 모든 것, 살아가면서 보게 되는 모든 것에 흥미를 느끼고 거기서 영감을 받는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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