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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오늘]세상에 태어나지 못할 뻔한 ‘89세’ 미키 마우스

전선익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1.18 09:00

수정 2017.11.18 09:00

- 세계 최초 유성 애니메이션 ‘증기선 윌리’ 탄생
- 혐오스럽게만 여겨지던 생쥐를 캐릭터화해 성공한 월트 디즈니
디즈니 만화 스팀보트 윌리 포스터 /사진=Amazon.com
디즈니 만화 스팀보트 윌리 포스터 /사진=Amazon.com
미키 마우스가 휘파람을 불며 증기선의 키를 잡고 운항을 하고 있는 장면. 오늘날의 젊은 세대들은 이 장면을 잘 모를 수도 있습니다.

1928년 11월 18일 출시된 ‘증기선 윌리(Steamboat Willie)’의 첫 장면인 이 장면은 애니메이션계를 발칵 뒤집어 놓습니다. 무성영화가 주류였던 세상에 움직임에 맞춰 노래와 휘파람 소리가 나오는 유성 애니메이션의 등장은 충격 그 자체였던 것입니다.

미국을 넘어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아직까지도 사랑과 존경을 받는 월트 디즈니(Walt Disney)씨는 혐오스런 생쥐를 캐릭터로 재탄생 시킨 성공한 사업가입니다. 미키 마우스의 성공으로 그는 오스카 시상식에서 32회나 수상하는 대기록(개인 최다 수상)을 달성합니다.

미국 문화의 아이콘이자 현대 애니메이션의 뿌리가 된 그의 업적을 보면 그를 단지 성공한 사업가로만 치부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디즈니씨가 처음부터 성공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공을 들여 만든 ‘오즈왈드 더 럭키 래빗(Oswald the Lucky Rabbit)’의 저작권을 유니버설(Universal)에게 뺏기고 좌절하게 됩니다. ‘오즈왈드 더 럭키 래빗’은 토끼를 캐릭터화 한 작품으로 후에 미키 마우스의 전신이 됩니다. 최근에는 라인 스티커로 출시돼 매니아 층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라인의 오스왈드 더 럭키 래빗 이모티콘 /사진=fnDB
라인의 오스왈드 더 럭키 래빗 이모티콘 /사진=fnDB
디즈니씨는 이후 야심차게 출시한 두 애니메이션(정신나간 비행기, 질주하는 가우초)이 모두 흥행에 실패하자 극도로 어려운 생활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전 재산을 털어 ‘증기선 윌리’를 제작하기로 결심합니다.

‘증기선 윌리’는 사실 무성 애니메이션으로 제작이 시작됐었습니다. 제작 도중 세계 최초의 유성 영화 ‘재즈싱어(The Jazz Singer)’를 보게 된 디즈니씨는 판을 뒤엎고 다시 유성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기로 결심합니다.

세계 애니메이션 백과에 따르면 당시 무성영화는 영사기로 초당 18 프레임을 투사했습니다. 캐릭터의 음성을 입모양에 맞추는 토키 영화를 제작하고 싶었던 디즈니씨는 초당 24프레임이 필요했습니다. 디즈니씨는 당시 돈으로 1만 달러가 넘는 제작비를 투자하기로 결심합니다. 이 작품이 제작되는 동안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가 심각한 재정난에 빠질 정도로 모든 재원을 ‘증기선 윌리’에 투자한 것입니다.

그리고 1928년 11월 18일 ‘증기선 윌리’는 그렇게 세상의 빛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디즈니씨는 자신의 성공에 밑거름이 돼 준 ‘증기선 윌리’를 영원히 기억하고자 11월 18일을 미키 마우스의 생일로 삼습니다.
‘증기선 윌리’가 성공하지 못했다면, 또는 디즈니씨가 제작을 포기했다면 우리는 미키 마우스를 영원히 볼 수 없을 뻔했습니다.

sijeon@fnnews.com 전선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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