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금융일반

[Money & Money] 상속·증여 문턱 낮춘 '보급형 신탁상품' 가입액 최저 500만원… 중산층 주고객

이세경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1.05 17:14

수정 2017.11.05 17:14

일시불.3~5년 분할 지급 등 특정 날짜 지정 지급 가능
장례비용 등 미리 남겨놓는 가족배려신탁 상품도 제공
잠원동에 사는 이 모씨(69세) 최근 세번째 손주를 얻었다. 7년 전 처음 품에 안은 큰 손주는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내 자식은 예쁜 줄 모르고 키웠지만, 손주는 그렇게 예쁘더라'는 말을 이젠 매일 실감하고 산다. 하지만 손주들을 안을 때 마다 앞으로 이들과 함께 할 날이 얼마나 될지 자꾸 헤아려 보게 된다. 내년이면 벌써 칠순인데 손주들이 대학생이 되고, 시집.장가를 가는 건 볼 수 있을까.
[Money & Money] 상속·증여 문턱 낮춘 '보급형 신탁상품' 가입액 최저 500만원… 중산층 주고객

이제 상속과 증여는 '재벌'들 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시중은행에 따르면 최근 상속.증여 상품에 관심을 60.70대 시니어 고객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 씨와 같이 노후 생활에 큰 걱정이 없는 중산층 고객이다. 이들은 대부분 손자의 대학 등록금과 결혼자금, 또는 본인의 장례비용 등을 미리 마련하고 싶어한다. 자신이 세상을 떠나고 난 후에도 자식과 손주들의 앞날을 보살펴 주고, 할아버지.할머니의 사랑을 전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은행들이 최근 앞다퉈 '보급형' 상속 신탁 상품을 내놓고 있는 것도 이들의 니즈를 충족하기 위해서다.

■신탁에 '사랑'을 담다

기존 상속.증여 신탁 상품은 대부분 고액 자산가들을 위주로 판매됐다. 유언신탁, 유언대용신탁, 수익자연속신탁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가입금액은 최소 5억~10억원 수준에 설정된다.

금융사와 자산가가 신탁계약을 맺으면 생전에는 계약자의 금융, 부동산 자산을 금융사가 대신 관리하고, 사후에는 금융사가 상속인을 위해 재산승계를 돕는다. 상속.증여와 관련된 복잡한 법률.세금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고, 가족들 간에 분쟁의 가능성도 줄일 수 있어서 각광을 받는다.

하지만 고액의 자산을 보유하지 않은 중산층들에게도, 자식들과 손주들을 위해 목돈을 남겨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 거창하게 유언을 남기고 싶진 않지만, 자신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손주들의 대학자금, 결혼자금을 보태주거나 첫 집, 첫 자동차를 사주고 싶은 경우다. 시중은행들이 앞다퉈 출시하고 있는 '보급형' 신탁상품은 이런 부모와 조부모의 마음을 겨냥했다.

우선 가입 금액이 최저 500만원으로, 상속.증여 신탁에 대한 문턱을 크게 낮춘 것이 '보급형' 상품의 가장 큰 특징이다. 500만원 이상의 목돈을 미리 신탁 상품에 맡기고, 사후 그 자금을 어디에 활용할지를 선택할 수 있다. 대학 학자금, 결혼 자금, 주택자금, 자동차 구입 자금 등 선택지는 다양하다.

자신의 사후에 일시불로 제공할 수도 있고, 3년이나 5년 주기로 분할 지급할 수도 있다. 손주의 생일이나 대학 입학일 등 특정 날짜를 지정해 제공하는 것도 가능하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관련법 상 상속.증여 신탁 상품을 활용하더라도 다른 국가의 경우처럼 상속, 증여세 절감 효과를 누릴 수는 없다"며 "대신 원하는 자금을 원하는 때에, 원하는 목적에 쓰도록 제공하고, 미리 작성한 메모나 편지를 같이 전달해 '선물'과 같은 느낌을 담아 상품 매력도를 높였다"고 설명했다.

■상속의 문턱을 낮춰라

KB국민은행은 이 달부터 'KB금지옥엽신탁'을 판매하고 있다. 손주들에 대한 조부모의 사랑을 겨냥한 상품이다. 대부분 은행들이 장례비용을 위한 신탁 상품을 판매하는 것과 달리, 은행권 처음으로 특정한 목적을 위해 목돈을 남길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상속형은 조부모가 손주를 위해 은행에 맡긴 자금을 조부모 사후에 용돈, 생일 축하금 등의 사전에 정한 일정대로 손주에게 지급하는 형태다. 증여형의 경우 조부모가 은행에 맡긴 자금을 손자가 결혼하거나 대학 입학, 자동차 구입시에 증여하는 구조다. 사후형은 조부모 사후 생일, 손주 생일 등 사전 정한 일정에 손주에게 상속할 수 있다. 지급 시에 조부모가 미리 작성한 메시지를 기록한 증서도 함께 전달된다. KB국민은행은 신상품 출시를 기념해 선착순 100명의 고객에게 '무료 가훈액자'를 제공하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NH농협은행은 'NH All100플랜 사랑남김신탁'을 판매 중이다. 이 상품은 고객이 장례비 등 필요비용을 미리 남겨 유족이 걱정 없이 장례 절차를 진행할 수 있게 한 것이 특징. 제휴한 상조회사로부터 상조비용 10% 할인을 받을 수 있고 생전 장례지도사의 동행하에 안치 시설을 둘러볼 수도 있다. 후손에게 남기고 싶은 인생 이야기를 자서전으로 제작하고 싶다면 40% 할인된 가격으로 제작 서비스를 받을 수도 있다.
KEB하나은행도 장례비용을 포함한 금전재산을 사전에 정한 귀속 권리자에게 지급하는 '가족배려신탁'을 판매하고 있다. 세무, 법률, 상속재산 분할 등 상속 컨설팅도 함께 제공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국내에서 여전히 상속과 증여는 '금수저'라는 말과 함께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며 "하지만 고령화가 진행될 수록 상속과 증여에 대한 관심이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상속.증여에 대한 이미지 전환, 보급형 신탁 상품을 통한 문턱 낮추기 등의 노력을 기울이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seilee@fnnews.com 이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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