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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환율조작국

염주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0.18 17:02

수정 2017.10.18 17:02

1988년은 한국 경제에 악몽의 해로 기억된다. 미국 재무부가 한국을 대만과 함께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 조치로 치명타를 입었다. 환율조작국 지정 전후인 1987년과 1989년을 비교하면 확연히 드러난다. 달러 대비 원화 값이 20% 상승(환율 하락)했고, 그 여파로 실질 경제성장률이 12.3%에서 6.8%로 거의 반토막이 났다.

쌍둥이 적자로 골머리를 앓던 로널드 레이건 미 행정부는 탈출구를 환율에서 찾았다.
1차 타깃은 일본이었다. 1985년 플라자 합의를 통해 향후 2년여 동안 일본 엔화를 달러화 대비 무려 94%나 절상시켰다. 이어 미 의회는 1988년에 '종합무역법'을 만들었다. 이 법은 대미 무역수지 흑자국 가운데 환율조작 혐의가 있는 나라를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수 있게 했다. 첫 희생양이 한국이었다.

당시 우리 외환당국의 인위적인 시장개입은 국내에서도 문제로 지적됐다. 그럼에도 종합무역법은 환율조작국 지정 요건이 불명확해 무역 보복 수단으로 자의적인 운영의 소지가 크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다. 이런 비판을 감안해 환율조작국 지정 요건을 객관화한 것이 2015년에 제정된 '교역촉진법'이다. 이 법은 대미 무역흑자 200억달러 초과,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흑자비율 3% 초과, GDP 대비 순매수 개입 비중 2% 초과 등 3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환율조작국이란 이름도 '심층분석대상국'으로 순화했다. 그러나 일단 지정되면 1년의 시정기간을 거쳐 미국 기업의 해당국 투자제한, 해당국 기업의 미국 조달시장 진입 금지 등의 강력한 제재를 받게 된다. 여전히 위협적인 무기다.

국제사회는 법보다 힘이 먼저다. 다자 간, 양자 간 조약이 즐비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쓸모가 없다. 최근 반덤핑,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등을 앞세워 한국 기업들 닦달에 나선 미 트럼프 행정부의 위세가 도를 넘고 있다. 북핵위기 국면에서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 맞대응을 하기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미 재무부가 18일 의회에 제출한 올 하반기 환율보고서에서 한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지 않았다. 평가항목 3가지 요건 중 두가지만 해당돼 관찰대상국으로 분류했다.
다행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환율조작국 악몽에 시달려야 하는 걸까.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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