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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생존배낭

구본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0.16 16:57

수정 2017.10.16 16:57

미국 하와이 주정부가 북핵에 대응해 주민 대피지침을 마련했다는 소식이다. 북한의 핵.미사일을 격추하지 못할 때를 상정해 '생존배낭'을 꾸려 두라는 권고가 포함돼 있다. 배낭에 14일치의 음식과 물을 비롯해 AM.FM 라디오, 방수포와 담요, 신용카드 불통에 대비한 소액권 현금 등을 담아두라는 등 구체적 주문도 담겨 있다.

하와이는 북한에서 약 7500㎞ 떨어진 곳이다. 그래서인지 일부 네티즌은 지나친 호들갑이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하와이가 북한의 화성14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유효 사거리에 있음을 감안하면 그렇게 볼 일도 아니다.
외려 북핵을 머리에 이고 살게 될 판인 우리가 너무 무신경하다는 느낌조차 든다. 며칠 전 한 의원이 안보불감증을 따지기 위해 국정감사장에 생존배낭을 들고 나와 용도를 묻는데도 어리둥절한 표정만 짓는 외교부 장관의 모습에서 떠올리게 된 단상이다.

더욱이 국방연구원이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을 상정해 피해상황을 시뮬레이션한 결과를 보라. 북이 20㏏ 규모의 핵탄두를 탑재한 스커드 미사일을 서울 도심으로 쏘면 이른바 '폭심(暴心)지'에서 1㎞ 안쪽의 사람들을 포함해 최대 300만명의 인명피해가 생길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핵폭발 후 48시간 안에 대응을 잘하면 인명피해는 5만명 수준으로 낮출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때 폭심지로부터 1㎞ 지점 바깥쪽에서 구호의 손길을 기다리는 이들에겐 생존배낭이 구명의 동아줄인 셈이다.

물론 온 국민은 김정은 정권이 '핵 불장난'을 저지르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하지만 고대 로마의 장군 베게티우스는 '평화를 원하면, 전쟁에 대비하라'는 격언을 남겼다. 사실 우리는 진작에 스위스의 철저한 민방위 태세를 벤치마킹했어야 했다.
영세중립국인데도 국민들은 실전 대비를 방불케 하는 민방위 훈련을 하고 생존배낭은 집집마다 필수품이라 하지 않나. 1년 전 지진을 경험한 한 경주 시민이 몇 달 전 식구 수만큼 생존배낭을 신발장에 비치해 화제가 됐었다. 만사 불여튼튼이라고 했다.
한 집에 생존배낭 하나쯤 미리 준비해 두는 게 현명하다는 생각도 든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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