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미국의 ‘무릎 꿇기 운동’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9.29 17:16 수정 : 2017.09.29 17:16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여성과 이민자에 이어 프로스포츠 선수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프로풋볼(NFL) 경기전에 항상 울려 퍼지는 국가 연주 때 일부 선수들이 가슴에 손을 얹는 대신 팔짱을 끼거나 무릎을 꿇는 행위가 트럼프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NFL 선수들의 '국가 연주 무릎 꿇기'는 지난해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에서 활약했던 콜린 캐퍼닉이라는 선수가 흑인 및 소수민족에 대한 경찰들의 과잉진압에 항의한다는 뜻에서 시작된 뒤 NFL뿐만 아니라 미국프로농구(NBA)와 북미 프로아이스하키리그(NHL)까지 확산되기 시작했다.

국수주의자인 트럼프 대통령은 운동선수들의 이 같은 행위에 대해 "인종차별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국가와 국기에 대한 존중 문제"라면서 항의하는 선수들은 팀에서 즉각 퇴출돼야 한다는 강경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백악관의 세라 허커비 대변인도 "대통령이 국기와 국가, 또 이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 숨진 이들을 옹호하는 것은 항상 적절하다"며 "대통령은 인종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사회적 문제에 대한 운동선수들의 항의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1968년 멕시코 올림픽 당시 일어났던 '검은 장갑' 항의다. 당시 남자 육상 200m에서 금메달과 동메달을 차지한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는 메달 시상대에 올라 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 후 미국의 국가가 경기장에 울려 퍼지자 이들은 고개를 숙이고 검은 장갑을 낀 주먹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당시 미국 사회에서 만연했던 인종차별에 대한 무언의 항의였다. 하지만 스미스와 카를로스는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다음날 바로 올림픽 선수촌에서 추방당했으며 미국으로 돌아와서는 오랫동안 살해협박에 시달려야 했다.

지금 미국 스포츠계에서 일고 있는 '무릎 꿇기 항의'에 대해 미국의 찬반 여론은 반반이다. 일각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미국 수정헌법 1조에 따라 선수들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반대파들은 "국가를 무시하는 것은 나라에 대한 모독"이라며 비난의 목소리를 아끼지 않고 있다. 양쪽 모두 일리 있는 주장이다.

문제는 사회적 이슈의 근본적인 이유와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국가를 무시하면 무조건 나쁘다"라는 트럼프의 '흑백논리'가 미국의 인종갈등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다.

뉴욕타임스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는 스포츠인들의 '무릎 꿇기'가 내년 초 열리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지적했다.

정말 미국의 꼴이 말이 아니다. 한 사람의 리더십 결여로 세계 최강국의 위상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대통령이라면 자신의 견해를 생각나는 대로 마구 트위터에 올릴 것이 아니라 국가가 처해 있는 가장 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곰곰이 생각하고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국이 현재 처한 가장 큰 문제는 인종차별과 소득불평등이다.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상위 1% 가계가 보유한 부의 비중은 전체의 38.6%로 3년 전의 36.3%보다 올라갔으며 상위 10% 가계가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 1989년 66.8%에서 사상 최고 수준인 77.2%로 급등했다.

인종별로는 백인가정의 경우 중간 순자산이 17만1000달러로 흑인가정에 비해 무려 10배 수준을 나타냈다. 보고서는 "부의 양극화가 점점 더 심화되고 있는 사실을 입증해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유경쟁 국가에서 소득불평등 현상을 해결하기는 결코 쉽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저절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트럼프가 변하지 않는 한 무릎 꿇기 시위는 더더욱 확산될 것 같다.

jjung72@fnnews.com 정지원 뉴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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