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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中 WTO 제소카드' 꺼낼 때다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9.21 17:10

수정 2017.09.21 22:13

[여의나루] '中 WTO 제소카드' 꺼낼 때다

세계는 지금 중국을 'G2'라고 부르고, 중국이 막아서면 되는 일이 없을 지경이 됐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관련해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이 중국 당국의 자의적 조치로 보고 있는 피해가 막대하다. 급기야 L기업은 매장을 전면 철수하기로 결정하고 매물로 내놓았다는 뉴스가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의 이렇다 할 조치가 보이지 않아서 국민 된 입장에서 정부의 무기력이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국제사회가 국내사회와 크게 다른 점 중 하나는 시비를 가릴 수 있는 강제 규범과 이를 집행할 수 있는 공권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려웠던 협상을 거쳐 1995년 출범한 세계무역기구(WTO)에는 회원국들이 합의한 분쟁해결 절차가 있다.
합의한 룰에 따라 교역을 하고 서로 다툼이 있으면 합의한 절차에 따라 중재 패널을 구성해 판정을 받자는 것이다. 국제통상 분야가 정치·안보 분야보다 법치 면에서 앞서가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많은 국민이 한·중 간 마늘분쟁을 기억하시리라. 2000년 우리나라가 중국산 냉동·초산 마늘에 긴급수입제한조치를 발동했을 때 중국 측은 우리 측에 휴대폰과 폴리에틸렌 수입중단 조치로 보복했다. 당시 우리 통상 당국자들은 중국이 WTO 가입국이 아니었던 점을 얼마나 아쉬워했던가. 중국이 WTO 회원국이었다면 WTO 규범에 따라 분쟁해결 절차를 발동해 우리 조치의 정당성과 중국 측 보복조치의 부당성을 적실하게 밝혀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중국이 2001년 WTO 회원국이 됐고, 연간 4조달러의 세계 최대 교역국이 됐다. 그만큼 세계 교역질서 정립을 위한 책임도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WTO 회원국 간에는 529건의 제소가 있었고 그중 369건에 대해 패널 설치가 있었다. 나머지 160건은 패널이 설치되기 전 양자적 합의가 있어 해결된 것들이다. 중국도 회원국이 된 이후 지난 17년간 15건을 제소하고, 39건의 제소를 당했었다. 미국·유럽연합(EU)·멕시코·캐나다 등이 중국을 제소했고 일본도 두 건을 제소했다. 아직까지 한·중 간에는 WTO 제소 건이 없다. 물론 우리 정부로서는 최대 교역상대국인 중국을 '법대로 하자'고 WTO에 제소하는 데 부담을 느끼고 신중히 검토해야 할 점들이 있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21조의 안보상 예외에 따른 중국 측의 안보침해 주장도 짚어봐야 한다고 한다. 사드 배치는 우리 기업이 기업 활동의 일환으로 한 것이 아니다. 또한 우리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 내놓은 상품과 용역은 중국의 안보와는 무관한 것들이므로 이런 주장은 사리에 맞지 않다.

협상에 나서는 사람들은 늘 '모멘텀'을 생각한다. 일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생겨 나올까를 가늠해보는 것이다. 지금 중국 사회의 의사결정 모습을 고려해본다면 조용한 설득으로 문제 해결의 모멘텀이 생겨나기는 난망하다. 또한 우리 기업들이 중국 정부를 상대로 ISD를 제기하도록 기대하기도 어렵다. 아무리 둘러봐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WTO 분쟁해결 절차를 시작하는 길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우방 간에도 교역량과 상호투자가 왕성할수록 분쟁은 자주 발생한다. 미·EU 간도 그렇고 미·캐나다 간에도 마찬가지다. 대립된 입장이 서로 좋게 해결되지 않으면 상호 합의한 룰에 근거해 중재 판정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중재 판정절차 진행 중에도 양자가 좋게 합의해 끝내는 경우도 많이 있다. 중국 정부에 우리 입장을 정확히 알리고 말미를 주자. 그리고 말미가 다할 때까지 좋은 소식이 없으면 WTO 분쟁해결 절차를 시작해야 한다.
그것도 싫으면 억울한 마음을 꾹 누르고 참고 살아가든지. 단 이 경우 우리 정부는 국민에게 왜 억울해도 참아야 하는지 설명해야 할 것이다.

김종훈 전 외교부 통상교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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