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장관 말 한마디가 가진 무게

김경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9.21 16:46

수정 2017.09.21 16:46

[기자수첩] 장관 말 한마디가 가진 무게

'말의 무게는 곧 사람의 무게.'(조선 지식인의 말하기 노트 中)

요즘 말 한마디 때문에 제대로 곤욕을 치른 고위 공직자가 있다. 주인공은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두달 전 교수 신분이라면 아무것도 아니었을 발언이지만 장관이 된 지금은 말의 무게가 확 달라져서다.

백 장관은 얼마 전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반도체.디스플레이업계 간담회'에서 "중국에 투자하는 것보다 국내 투자를 확대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말해 논란을 빚었다.

국내 기업들이 현재 중국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고 기술·인력 유출 가능성에도 각별히 신경써야 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시장은 중국 투자의 위험성을 언급해 우리 기업의 중국 진출이 막히는 것 아니냐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반도체 등 국가 핵심기술의 해외공장 설립 승인권한을 가진 정부가 업계의 중국 투자에 부정적 입장을 밝힌 것으로 해석했다.
이는 곧바로 관련업체들의 해외투자가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로 번졌다. 정보에 빠른 친구들이 먼저 진위(?)를 물어왔다.

하루 사이 주식시장에선 난리가 났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초강세를 보이던 반도체 주가가 일제히 약세로 돌아섰다. 5일 연속 오르던 LG디스플레이도 5%나 급락했다. 지분 구조가 취약한 협력사의 주가는 더 크게 요동쳤다.

업계는 발칵 뒤집혔다. 당사자인 삼성과 SK, LG는 "투자변경 계획이 없다"는 안해도 될 해명을 해야 했다. 관련부서는 이들 협력사를 진정시키느라 하루 종일 전화통을 붙들었다. "기업이 왜 중국으로 가는지 정말 몰라서 그런 말을 하느냐"고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다. 장관의 말이 만들어낸 '일폭탄'이자 계산할 수 없는 사회적 손실이다.

장관이 기업의 해외진출 배경을 모를 리는 없다. 다만 백 장관의 말은 결과적으로 우리 기업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꼴이 됐다. 백 장관은 바로 다음 날 "원론적 얘기였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물은 이미 엎질러졌다.

사실 그 간담회는 비공개였다. 최초 기사도 자리에 참석한 관계자의 전언을 바탕으로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같은 말도 언제 하느냐, 톤이 어떤가에 따라 무게와 해석이 다르다.
백 장관이 서먹한 분위기를 깨기 위한 '아이스 브레이킹'으로 뱉은 말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장관의 말이 파생돼 피해를 본 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번 일로 백 장관은 '장관의 말' 한마디가 가진 무게를 체감했을 것이다.

km@fnnews.com 김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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