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이혁의 눈] “우리 동네는 절대 안 돼!”.. ‘님비현상’ 부추기는 놀부 심보

이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9.24 09:00

수정 2017.09.24 09:00

특수학교, 노인복지시설 등 집값 떨어질 우려에 반대
소방서, 어린이집 등 편의시설도 교통난·소음 등의 이유로 거부
상생할 수 있는 공간 활용과 적극적인 소통 필요, 제도적 장치 마련해야
[이혁의 눈] “우리 동네는 절대 안 돼!”.. ‘님비현상’ 부추기는 놀부 심보

지역 이기주의라고도 일컫는 ‘님비현상’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님비현상이란 ‘Not in my backyard’를 줄인 말로 ‘내 뒷마당에서는 안 돼’라는 뜻이다. 즉, 장애인 시설이나 쓰레기 처리장 등 지역 주민들이 싫어할 시설이나 땅값이 떨어질 우려가 있는 시설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는 현상이다.

최근에는 특수학교 설립, 노인복지시설뿐만 아니라 소방서, 어린이집, 영화관도 님비 대상이 되며 무차별로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님비현상’에 대해서 집중 조명해본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 “교육의 기회를 균등하게” vs “집값 떨어지고 동네 이미지 나빠져”

강서구 옛 공진 초등학교 터에 특수학교와 국립 한방병원 설치 문제를 놓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부모들은 지역에 다닐 수 있는 학교가 없어 통학 거리가 너무 멀고 일반학교에서는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없기 때문에 특수학교 설치를 주장하고 있다. 비장애 아동도 아침마다 등교 준비 때문에 전쟁을 치르는 데 장애 아동은 더 힘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교육청이 특수학교 재학생 4,64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통학 시간이 30분~1시간인 학생이 1,943명(41.8%)였고, 1~2시간인 학생도 138명(3%)로 나타났다.

반면 국립 한방병원 설치를 주장하는 이들은 특수학교를 혐오시설로 규정하며 집값이 떨어지고 동네 이미지가 나빠질 우려가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서울시 교육청이 국립 한방병원을 빼앗아 가려 한다’며 플래카드를 선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특수학교가 들어서면 집값이 내려간다는 주장은 편견에 불과하다.

올해 4월 교육부가 부산대 교육발전연구소에 의뢰해 ‘특수학교 설립의 발전적인 방향 모색을 위한 정책 연구’ 결과에 따르면, 특수학교 1km 이내 인접지역과 1~2km 떨어진 비인접지역의 땅값과 아파트 가격 등은 차이가 없었으며 오히려 특수학교 인접지역에서 가격이 오른 경우도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전국 16개 시도(세종시 제외)의 167개 특수학교의 인접·비인접 지역에 대한 2006~2016년 땅값, 단독주택 가격, 아파트 가격 등 10가지 지표를 비교해보니 특수학교 인접지역의 땅값은 연평균 4.34%, 비인접 지역은 4.29% 올라 차이가 크지 않았다. 단독주택도 인접지역(2.58%)과 비인접 지역(2.81%) 간의 차이가 미미했으며, 아파트 가격 역시 인접지역(5.46%)과 비인접 지역(5.35%)의 차이가 거의 없었다. 대구는 오히려 땅값·단독주택·아파트 가격 상승률에서 모두 특수학교 인접지역이 비인접지역보다 높았다.

부동산 공시가격이 도입된 1996년 이후 60개 학교의 부동산 가격을 비교한 조사에서도 결과는 비슷했다. 16개 지역 중 14개 지역은 특수학교 설립 직후 인접·비인접 지역 간 부동산 가격은 차이가 없었고, 울산, 경남 2개 지역은 인접 지역에서 부동산 가격 상승률이 더 높게 나타났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 소방서, 어린이집 등 편의시설도 거부하는 이유는?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유일하게 소방서가 없는 금천구.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와 금천구는 지난해 1월 독산 2동에 소방서를 짓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주민들 반대 때문에 난항을 겪었다. 주민들은 사이렌 소리, 횡단보도 이전, 보상 등의 문제 때문에 반대했다.

만약 금천구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구로소방서에서 출동해야 하는데 구로구와 금천구 주민 70만 명의 현실을 철저히 외면한 것이다. 수차례의 설득 끝에 올해 6월 소방서 설립이 결정됐지만 공익과 상생을 위한 시설도 주민 반대 때문에 1년 반이라는 시간을 허비해 버리고 만 것이다.

국공립 어린이집은 질 좋은 보육 서비스 때문에 인기가 많지만 들어가기는 하늘의 별 따기 만큼 어렵다. 현재 수요만큼 공급이 없어 자녀를 둔 부모들은 애가 탄다. 서울 용산구는 국공립 어린이집 설립 때문에 주민들과 갈등을 빚었다. 한남동 응봉근린공원 일부에 어린이집을 짓기 위해 지난 3월 착공할 계획이었지만 일부 주민들이 공원 이용이 불편해지고 교통난과 소음 문제로 반대했기 때문이다. 상반기 내내 진통을 겪은 용산구청은 ‘인근 지역 아동 우선 입학’ 등의 조건을 내걸고 6월에 간신히 착공에 들어갔다.

영화관이나 대형 복합 쇼핑몰 같은 편의시설은 주거 생활의 질을 높여 주고 집값 상승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선호하는 시설인데 찬밥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지난 3월 서울 도곡동 매봉역 인근 아파트 주민들은 영화관 입주를 반대했다. 유동 인구가 많아져 동네가 복잡해지고 주변 차도가 막힐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현재 도곡동 매봉역 인근은 아파트와 고급빌라 등이 있는 조용한 주택가인데 1000석 가까운 대형 영화관이 들어온다는 소식에 주민들이 강하게 반발한 것이다.

교통난과 사생활 침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에 주민들은 강남구청에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보상금을 받아내기 위해 일단 반대 목소리부터 높이고 본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최근 서울 성수동에서는 인근 아파트 주민들이 영화관 건물 신축을 반대하며 비상대책위까지 결성했다. 교통과 주차 문제가 심각해진다는 것이 이유다. 또한, 영화관 인근에 학교가 많아서 아이들 통학 안전도 위험하고 일조권과 조망권 영향 때문이라는 시선도 있다.

■ 서로 소통하고 배려해야.. 상생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필요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밀알학교는 지역 주민들에게 교내 미술관과 카페 등을 연중 개방하면서 주민들과 소통하며 공존하고 있다. 지역사회를 위한 문화공간으로 변신한 것이다. 강북구에 위치한 서울효정학교 역시 주민들과 장애인이 소통하고 교내 헬스장을 주민들에게 개방한다. 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모임이 있으면 식당과 강당을 빌려주기도 한다.

결국 님비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소통을 해야 한다. 지역 주민들은 경제적 이익에만 집착하지 말고 남에 대한 배려를 해야 한다.
모두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때로는 희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역 사회에서는 희생에 대해서는 적절한 보상을 해줘야 하며 일방적 통보가 아닌 충분히 대화를 하고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서로 도우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 말뿐인 상생이 아닌 실질적인 방안과 제도적인 장치도 필요해 보인다.

hyuk7179@fnnews.com 이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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