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 이낙연·김상조만큼만 했으면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9.18 16:59

수정 2017.09.18 16:59

문재인 대통령 용인술에 실망.. 총리·공정위장 덕에 낙제 면해
제 할 말 하는 실력파 중용해야
[곽인찬 칼럼] 이낙연·김상조만큼만 했으면

문재인 대통령의 사람 고르는 능력은 실망이다. 인물이 그렇게 없을까 싶다. 이 잡듯 뒤지는 청문회 핑계는 대지 마라. 삼고초려 아니라 십고초려를 해서라도 좋은 사람을 찾으면 야당도 함부로 못한다. 깜냥이 안 되는 사람을 자꾸 세우니까 줄줄이 낙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수첩인사' 비아냥을 받았다. 새 정부도 '수첩'만 아닐 뿐 인재풀이 좁긴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문 대통령 인사가 낙제 수준은 아니다. 두 사람 덕분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이낙연 총리. 이때만큼은 문 대통령의 선구안이 빛났다. 난 두 분과 일면식도 없다. 밥 한 끼 같이 먹은 적도 없다. 그렇지만 공개적으로 칭찬하고 싶다.

먼저 김 위원장. 전문성에서 발군이다. 면장도 뭘 알아야 한다. 장관은 말할 것도 없다. 대기업 순환출자 구조는 반도체 회로도만큼 복잡하다. 이 그림을 이해하고 해법을 낼 수 있는 사람은 한국에 몇 안 된다. 경제개혁연대 소장 출신인 김 위원장은 그중 하나다.

깊이 알면 선무당처럼 굴지 못한다. 지난 6월 취임사에서 김상조는 "4대 그룹을 찍어서 몰아치듯이 (재벌개혁을) 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주 시민사회단체와 간담회에선 "공정위는 민원기관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공정위는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하라고 만든 정부기구다(공정거래법 1조). 민원 해결사가 아니라는 그의 말은 백번 옳다. 나는 김 위원장이 합리적 진보의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믿는다.

진보는 자칫 도덕적 우월성이란 함정에 빠지기 쉽다. 지난주 김이수 헌재소장 후보자가 국회 인준을 받는 데 실패했다. 그러자 청와대에서 "상상도 못했다"는 반응이 나왔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인준 부결을 상상조차 못했다는 게 나로선 상상이 안 된다.

같은 진보라도 김상조는 다르다. 얼마전 그는 네이버 창업자 이해진에 대해 "(애플의 스티브) 잡스처럼 미래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그러자 또 다른 포털 다음을 창업한 이재웅이 '오만'하다고 반박했다. 내가 진짜 놀란 것은 그 다음이다. 김 위원장은 "겸허하게 질책을 수용하고 공직자로서 더욱 자중하겠다"고 한 발 물러섰다. 김상조가 누군가. 예전엔 재벌 저격수로 이름을 날렸고, 지금은 재벌 저승사자다. 손가락만 까딱해도 기업들은 벌벌 떤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손가락을 움직이는 대신 몸을 낮췄다.

이낙연 총리를 보면 살짝 중국 당나라 때 위징이 떠오른다. 임금 태종에게 쓴소리를 밥 먹듯이 하고도 천고의 충신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이 총리는 지난주 "문재인정부의 가장 아쉬운 점 가운데 하나가 협치"라고 말했다. 김이수 인준안이 부결된 뒤 국회 답변에서다. "삼권분립이 살아 있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정치 현실을 직시한, 정곡을 찌르는 답변이 아닐 수 없다.

살충제 계란 파동 때 엄벙덤벙한 식약처장을 혼낼 땐 속이 다 시원했다. 네티즌들은 그런 이 총리에게 '여니'란 애칭을 붙였다. 문 대통령을 부르는 '이니'를 준용했다. 역대 총리 중에 이런 관심을 받은 이는 드물다.

문 대통령에게 당부한다.
여태껏 인사는 간신히 낙제를 면했다. 앞으로 인사는 이낙연.김상조 같은 사람만 뽑아라. 캠프라고 봐주고, 당(黨)이라고 봐주다간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현 정부에 이.김 같은 사람이 둘만 더 있어도 속이 후련하겠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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