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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기로에 선 알뜰폰] “알뜰폰, 알짜폰으로 거듭나야 생존"

김미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9.19 15:45

수정 2017.09.19 16:29

가성비 뛰어난 요금제와 유통 방식으로 소비자 선택 이끌어야
국내 알뜰폰(MVNO, 이동통신재판매) 서비스 7년, 통신요금 인하 정책의 직격탄을 맞아 생사를 걱정하는 알뜰폰을 향해 전문가들은 일제히 ‘싸구려 알뜰폰’이 아닌 ‘알짜폰’으로 거듭나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혁신적 요금제와 새로운 유통 방식으로 가성비(가격대비성능)를 중시하는 소비자의 선택을 이끌어 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미 미국, 일본, 스페인 등 주요국가의 알뜰폰 사업자들은 요금제·기술력·유통망 전반에 걸친 혁신을 통해 자국 이동통신시장에서 기존 이동통신회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경쟁자로 자리를 잡았다.

알뜰폰이 이동통신 시장의 경쟁세력으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알뜰폰 사업자들이 스스로 투자와 사업모델 개발에 나서는 것과 함께 정부 역시 알뜰폰 도매대가 산정 방식을 바꿔 요금제 개발의 여력을 제공하는 등 제도개선에 나서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덩치만 큰 속빈강정 알뜰폰
19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및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알뜰폰 시장은 프랑스·스페인 등 주요국가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빠른 시간에 성장했다. 2011년 7월 알뜰폰 제도 도입 당시와 통신시장 상황이 유사했던 프랑스와 비교해보면, 가입자 700만 명(시장점유율 11.4%)을 달성하는 데 소요된 기간이 한국은 5년9개월, 프랑스는 7년에 해당한다.
이동통신 회사의 도매대가 강제 인하와 전파사용료 감면 등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정책 덕이다.

하지만 겉만 화려할 뿐 내용은 없다. 현재 CJ헬로비전과 SK텔링크, 인스코비(프리텔레콤) 등 후불 요금제 알뜰폰 사업자 중 이동통신회사와 완전히 다른 모양새의 요금제를 출시하는 회사는 없다. 기존 이동통신 회사보다 요금이 쌀 뿐 요금구성은 동일한 모델로 이뤄져 있다.

■도매대가 산정 방식 바꿔 알뜰폰이 대형 대리점 벗어나도록 해야
현재 알뜰폰 업체들은 이동통신 회사에서 통신망을 빌리는 대가를 일반 가입자 요금에서 일정액을 뺀 만큼으로 산정한다. 알뜰폰 사업자가 아무리 가입자를 많이 모아도 도매요금이 내려갈 틈이 없다. 이동통신 회사는 경쟁력을 갖춘 알뜰폰을 협력사로 모실 이유도 없다.

이 때문에 알뜰폰 사업자들은 결국 도매요금으로 이동통신망을 떼다 소매로 파는 이동통신 회사의 대형 대리점 역할에 그칠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져 있는 셈이다. 이는 알뜰폰이 이동통신 시장의 경쟁자로 자리잡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알뜰폰 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알뜰폰 사업은 출범 초기부터 알뜰폰 사업자의 자체 요금설계 기능을 마련해 두지 않았다"며 "알뜰폰 업체들의 투자의지가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투자의지가 없는 알뜰폰 업체들을 대거 모아 연명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하면서 알뜰폰의 경쟁력은 정책에 넣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한국알뜰통신사업자협회 황성욱 부회장은 “알뜰폰 사업자가 장기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선 기존 이통사와 다른 서비스를 개발해 보급할 수 있는 길이 열려야 한다”며 “알뜰폰의 법적 개념을 재판매가 아닌 독립된 이동통신서비스 제공자로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지금처럼 이통사의 승인을 받아 요금을 설계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다량으로 데이터를 구매한 뒤 이를 쪼개서 다양한 요금제로 설계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소비자 10명 중 6명 "알뜰폰 자세히 모른다"
알뜰폰에 대한 소비자 인식 개선도 시급한 과제다. 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가 지난 4월부터 8월까지 이동통신가입자 1000명을 대상으로 알뜰폰 관련 설문조사를 한 결과, 소비자 10명 중 6명은 ‘알뜰폰을 들어본 적은 있으나 자세히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또 ‘싼 게 비지떡’이란 틀에 갇혀 ‘알뜰폰은 통화품질이 낮을 것’이란 막연한 우려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비스 도입 당시 홍보를 위해 채택한 ‘알뜰폰’이란 용어가 관련 업계와 정부 정책을 ‘요금의 늪’에 빠지게 했다는 지적이다. 최근 SK텔링크가 기존 알뜰폰 서비스명인 ‘SK알뜰폰 세븐모바일’에서 알뜰폰을 지우고 ‘SK 세븐모바일’로 브랜드를 바꾼 이유도 여기에 있다.
SK텔링크 박강근 MVNO사업본부장은 “변화하는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브랜드 리뉴얼을 단행했다”고 전했다. 우리처럼 알뜰폰 시장 점유율이 10%를 넘어선 미국의 경우, 이른바 ‘MVNO 2.0’이라 불리는 혁신모델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기존에는 선불 가입자 중심의 신용도가 낮은 이민자 등을 주요 타깃으로 했다면, 최근엔 무제한 음성·데이터 중심으로 획일화된 고가요금제를 기피하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혁신적인 요금제를 잇달아 출시하고 있다.

elikim@fnnews.com 김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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