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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관칼럼] 성매매가 사라진 자리, 인권이 피어납니다

예병정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9.17 17:08

수정 2017.09.17 17:09

[차관칼럼] 성매매가 사라진 자리, 인권이 피어납니다

2002년 1월 한 성매매 업소에서 전기 합선으로 인한 화재가 발생했다. 1층 쪽방에서 모여 자던 여종업원들은 출입구에서 불길이 치솟자 2층으로 피신하지만, 이들의 도주를 막기 위해 채워져 있던 자물쇠 때문에 결국 14명 모두 질식사하고 말았다. 앞서 2000년 같은 지역의 성매매 업소 집결지에서 5명이 유사한 사고로 희생된 데 이어 또다시 발생한 참사였다.

15년 전 이런 끔찍한 사건을 겪고 나서야 우리 사회는 비로소 성매매 여성들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 성매매를 인권의 문제로, 성매매 여성을 피의자가 아닌 피해자 관점에서 접근한 '성매매방지법'이 2004년 제정.시행됐다. 성매매 근절과 인권보호를 향한 현장단체, 국회, 정부 노력의 결정체였다.
성매매 알선업자에 대해 경미했던 처벌규정과 단속을 대폭 강화했다. 국가가 성매매 여성에 대해 상담·의료·법률 및 자활 지원 등 탈성매매를 위한 종합적 지원을 펼치게 됐고,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도 피해여성의 인권보호를 고려하게 됐다.

'성매매'를 말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는 무엇인가. 홍등가에서 자신의 성을 구매하도록 유혹하는 짙은 화장의 성매매 여성들인가. 혹시 '포주'나 '업주'들을 떠올리는가. 여성학자 정희진씨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은 창녀가 아니라 포주"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빚의 착취구조에 놓이는 성매매 여성들에게 포주와 중간업주들은 벗어날 수 없는 불안과 위협을 주고, 때로는 생명을 위협하기까지 한다. 성매매 구조 안에 있는 여성들은 대부분 성매매를 언젠가 그만둬야 할 일로 생각하면서도 이런 착취구조로부터 벗어나기 어렵다.

성매매란 '성이 사고 팔리는 것'이다. 그것이 어떤 원리와 이유에 의해 이뤄지든 우리가 주목해야 할 핵심은 성매매의 폭력성과 인권유린이다. 성매매는 '대가를 매개로 몸에 가해지는 폭력성'이 존재한다. 안전하고 건강한 성매매는 있을 수 없다. 이 때문에 성매매는 인간 존엄성의 문제이고 인권의 문제인 것이다.

여성가족부를 중심으로 한 범정부 차원의 노력으로 성매매의 불법성에 대한 일반 국민의 의식수준은 크게 높아졌다. 성매매 검거건수와 사범은 2004년 6000여건, 1만7000명에서 2016년 1만5000여건, 4만여명으로 증가했다. 성매매 피해자에 대한 의료.법률.직업교육 지원도 2004년 이후 꾸준히 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여성을 성산업으로 유인하는 왜곡된 성인식과 경제구조가 여전히 존재한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최근 청소년까지 성매매로 유인하는 랜덤 채팅앱 등이 성행하고 있는 점이다. 조건만남이나 유사 성행위 사례가 증가하고, 신·변종 성매매업소, 해외성매매 등 성매매 유형이 다양해지고 있다는 점도 커다란 과제다.

여성가족부는 변화하는 성매매 형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법무부, 경찰청 등과 협조를 강화하는 한편 제도개선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이다. 장기적 관점에서는 성매매가 초래하는 여성과 아동에 대한 성착취, 인신매매, 인권 침해 등을 꾸준히 교육함으로써 인간 존엄에 대한 인식을 제고해 나가려고 한다. 아울러 성매매 여성들이 성매매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삶의 수단을 찾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업소에서 벗어난 이후 재유입되지 않도록 지원해 나갈 계획이다.
성매매 피해 청소년의 동선을 고려한 현장상담도 하고, 청소년 대상 성매매를 권유.유인하는 사이트와 앱에 대해서는 상시적 모니터링과 단속 및 수사를 실시할 방침이다.

올해로 세 번째 성매매추방 주간(9월 19~25일)을 맞이한다.
무엇보다 인간의 성은 결코 매매의 대상이 될 수 없고, 인권은 무엇으로도 침해받을 수 없는 존엄한 것이라는 인식이 정착되기를 바란다. 성매매가 사라진 자리에서 인권이 피어남을 기억하며.

이숙진 여성가족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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