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현장르포]추석 코 앞인데, 임금 떼인 건설현장 근로자들..."죽고 싶다"

최용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9.17 15:00

수정 2017.09.17 15:00

지난 15일 인천 서구 신형동 근린생활시설 건설현장은 고요했다. 일용직 건설근로자들은 지난 7, 8월 임금을 받지 못했다./사진=최용준 기자
지난 15일 인천 서구 신형동 근린생활시설 건설현장은 고요했다. 일용직 건설근로자들은 지난 7, 8월 임금을 받지 못했다./사진=최용준 기자

“온 가족이 추석 때 알거지로 나앉게 생겼어요”
지난 15일 오후 못 박힌 각목 곁에서 황모씨(50)는 점심도 마다하고 담배만 피웠다. 담배연기가 철골작업을 진행 중인 5층 상가건물로 날아갔다.
자장면 그릇에 오른 나무젓가락과 공사자재가 겹쳐졌다.

공사 소음과 인부들 작업으로 분주했던 인천 서구 신현동 근린생활시설 건설현장은 고요했다. ‘밥 먹었으니 힘 내 일하자’는 망치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일용직 근로자들은 지난 7, 8월 임금을 받지 못했다. 돈 떼인 근로자만 어림 잡아 100명 이상이다. 체불금액만 10억원 가까이 된다. 건설시행사 A건설 등 4곳(원청)과 계약한 시공사 B건설(하청)이 지난달 21일 도산을 이유로 임금을 착복해 달아났다는 게 근로자들 주장이다. 하청업체 B건설의 재하청업체 소속 일용직근로자들은 원청에게 임금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월세 25만원 방도 내줘야 할 판"
원청은 하청과 계약했으니 재하청업체에게 임금을 지불해야 할 의무가 없다는 입장이다. 원청 S건설 관계자는 “인간적으로 안됐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도 손해”라고 말했다. 다른 건설 관계자 역시 “나도 피해자로, 하청업체 대표에 대한 행정제재 절차를 밟을 예정”이라고 전했다.

상가건물 철골작업은 90% 이상 끝났다. 이날 원청이 하청업체를 교체해 나머지 공정을 진행하려 하자 황씨를 비롯한 근로자 10여명은 망치 대신 “일용직 노임을 즉시 지급하라”는 피켓을 들었다. 일용직인 이들은 노동조합이 없다. 근로자 박모씨(50)는 “원청과 하청 둘이 계약했지만 거기에는 재하청 근로자 수백명의 목숨이 달려있다”고 설명했다.

재하청 철근작업 근로자 임금을 책임지는 황씨는 연신 죽고 싶다고 했다. 그는 “23년간 막노동판에서 이런 일을 숱하게 겪었다”며 “보증금 300만원, 월세 25만원에 산다. 이마저 명절에 쫓겨나게 생겼다”고 호소했다. 이어 “몸이 으스러져라 건물 올려두니 원청은 몰라라 하고 하청은 달아나고 노동청에 문의하니 돈 받아주는 곳이 아니라고 했다”고 가슴을 쳤다. 그는 “원청은 도의적 책임도 지지 않는다. 우리는 도대체 누구에게 피땀 흘려 일한 돈을 받아야 하느냐”고 울먹였다.

근로자들은 애먼 각목을 발로 찼다. 이들은 스스로를 인생막바지에 이른 처지라고 했다. 그런데 더 악재를 만났다고 자조했다. 외국인 근로자 김모씨(31)는 적법절차를 거쳐 일했지만 임금 700만원을 받지 못했다. 그는 “여름 콘크리트 열기와 폭우 속에 일했다”며 “지갑이 가득 차야 가족과 명절을 오붓하게 보낼텐데 당장 아기 분유 살 돈도 없다”고 말했다. 김씨 팔뚝은 여름내 달궈진 철근으로 입은 화상 때문에 얼룩덜룩했다.

앞서 고용노동부는 근로자들이 체불 없이 추석명절을 보낼 수 있도록 지난 10일부터 29일까지 3주간 ‘체불임금청산 집중지도기간’으로 정해 운영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명절을 앞둔 건설근로자들은 생존을 걱정하고 있다.

재하청 철근작업 근로자 임금을 책임지는 황모씨에게 온 문자. 황씨와 함께 일한 건설근로자들은 임금을 받지 못해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황씨는 "믿고 함께 일해준 동료들에게 빨리 임금을 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이런 문자는 칼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사진=최용준 기자
재하청 철근작업 근로자 임금을 책임지는 황모씨에게 온 문자. 황씨와 함께 일한 건설근로자들은 임금을 받지 못해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황씨는 "믿고 함께 일해준 동료들에게 빨리 임금을 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이런 문자는 칼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사진=최용준 기자

■돈 떼인 건설근로자만 7만명 이상
고용부에 따르면 2016년 전체 산업 체임은 약 1조 4286억원. 이중 건설업은 2366억원으로. 전체 약 17% 수준이다. 돈 떼인 건설근로자만 7만명이 넘는다.

임금체불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은 건설업이 다단계 하청 구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건설산업은 발주처 ▷원청(종합건설업체) ▷하청(전문건설업체) ▷재하청(근로자)구조다. 건설사에서 하청업체 법정관리나 도주 등이 발생할 경우 재하청업 근로자들은 원청에서 임금을 받기 어렵다. 책임소재가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문성덕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변호사는 “현행법상 원청은 계약당사자가 하청업체여서 재하청에게 직접 임금 지급은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전재희 건설노조 교육실장은 “건설산업기본법에 직상수급인연대책임 조항이 있다”며 “원청이 하청에 기성금을 보낼 때 관리감독이 부실하다. 노조는 직장수급연대책임을 물어 체불임금을 해결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하루 벌어 먹고사는 건설근로자가 1년간 재판을 거치는 것은 부담이 크다”며 “체불방지 입법 활동으로 임금지급보증제가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건설근로자공제회의 ‘2015 건설근로자종합실태조사’에 따르면 건설현장 근로자 10명 중 3명은 재산규모 1000만원 미만이다. 건설근로자 중 임시일용직 비율은 약 36%로 월평균 약 181만원을 번다.
전 산업(319만원) 대비 56% 수준이다.

junjun@fnnews.com 최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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