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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6차 핵실험 후폭풍] 트럼프, 아베와 먼저 통화…韓, ‘북핵 운전석’서 밀려날 판

조은효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9.04 17:59

수정 2017.09.04 22:01

코리아 패싱 우려
아베, 文대통령에도 전화.. 韓.美 정상 통화는 뒷전에
선택지 좁아진 文대통령
강경노선 속 대화 끈 안놓아.. 전술핵 배치 등 주도권 필요
[北 6차 핵실험 후폭풍] 트럼프, 아베와 먼저 통화…韓, ‘북핵 운전석’서 밀려날 판

지난 3일 북한이 6차 핵실험을 한 직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가장 먼저 찾은 외국 정상은 문재인 대통령이 아니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일 오후 8시46분께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내가 말했듯이, 한국은 대북 유화책이 작동하지 않는 것을 깨닫는 중"이라며 공개적으로 한국 정부에 면박을 가한 뒤 오후 11시께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심야통화를 했다.

심지어 이날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조석으로 북한 6차 핵실험(3일 낮 12시29분) 전후로 두 번이나 통화를 했다.

아베 총리는 통화 직후 기자들에게 "(미·일은) 북한에 전례없이 강력한 압력을 가하기로 인식을 함께했다"고 밝혔다. 미·일의 대북 메시지가 나간 다음날인 4일 청와대는 북한이 6차 핵실험을 한 지 만 하루가 지났어도 "백악관 측과 한.미 정상 통화 일정을 잡기 위해 조율 중"이라는 답변만 반복했다. 가장 먼저 긴밀히 협의해야 할 두 정상 간의 접촉 자체는 양국의 거리 만큼이나 더디고 어렵게 진행됐다.
지난 2012년 2월 13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12시간 만에 전화통화를 한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아베 '중간 메신저' 자처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간 전화통화가 하염없이 길어지고 있는 상황에 치고들어온 건 아베 총리였다.

이날 오전 11시께 아베 총리는 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북한에 대한 대응조치를 논의하자고 제시했다. 일본 측 요청에 따른 이번 통화는 약 20분간 이뤄졌다.

청와대 박수현 대변인은 "북한의 전날 6차 핵실험과 관련, 한·일 정상이 '최고도의 강력한 압박과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했다"고 전했다. 새 정부 들어 여섯번째 한·일 간 통화였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간 통화는 세번(지난 1일 마지막 통화 기준)에 불과한 상황에서 일본과는 여섯번이나 한 것이다.

7월 말까지만 해도 상황은 이렇게까지 답답하지 않았다. 북한이 첫번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시험발사한 직후까지만 해도 그 대응조치를 논의하기 위한 한·미·일 정상 간 접촉 순서는 '미·일 정상 통화(1단계)→한·미 정상통화(2단계)'의 순으로 이뤄졌다.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하기까지 최소한 트럼프.아베 통화 이후면 가능했다는 얘기다.

그런데 북한이 괌 포격 도발 위협 이후 8월 29일 북한이 두번째 ICBM급 미사일을 일본으로 발사한 직후부터, 중간단계로 한.일 정상 간 통화가 끼어들면서 순서상 두번째에 놓였던 한.미 정상 간 통화 시점이 더 늘어지기 시작했다. 미.일 정상 통화(1단계)→한.일 정상통화(2단계·일본 요청)→한·미 정상통화(3단계)로 세번째로 밀린 것이다.

최근 한.일 정상 간 통화는 모두 일본 측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아베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을 문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일종의 '중간 메신저', 나아가 동북아 중간관리자로서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러다간 '한반도 문제 운전석'까지 앉겠다고 할 판"이란 얘기까지 들린다. 한.미가 대북정책에 이견을 드러낼수록 일본의 입지는 강화될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는데도 여전히 청와대 외교안보라인 내에선 "북핵 문제는 어디까지나 북.미가 당사자가 돼 풀어야 할 문제인데, 코리아패싱을 지적하는 건 도대체 뭘 모르고 하는 말들"이라고 되레 볼멘 소리를 내고 있다.

■문 대통령의 선택

앞으로 문 대통령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일본처럼 미국을 따라 대북 강경노선으로 가느냐, 아니면 '한 발은 대북 강경책에, 다른 한 발은 대북 유화책에' 두는 투트랙 방식을 고수하느냐다.

북한 6차 핵실험 직후 문 대통령의 메시지는 대북 강경노선에 무게중심을 실은 듯 보이나 여전히 결과에 있어서 '대화를 통한 해결(평화적·외교적 해결)'뿐만 아니라 과정에 있어서의 '대화' 역시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 같은 '코리아 패싱' 국면에선 대북정책 전반을 재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한국이 일본에 전화통화에서 밀리고 있다는 건 한.미 동맹이 미.일 동맹보다 하위 레벨이라는 현실을 드러낸 것"이라며 "일본이 국익을 위해 미국과 100% 맞춰가듯이, 한국도 우회전하면서 좌회전 깜빡이를 켜는 대북정책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전술핵배치를 포함해 문 대통령이 조금 더 자신감을 가지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재를 가하면서도 협상도 해야 한다는 입장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달 중순 유엔 총회 참석을 위해 뉴욕 방문을 앞두고 있는 문 대통령으로선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느냐,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가느냐'의 선택의 기로에 놓인 셈이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김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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