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일반

[문재인정부 출범 100일] 기능 따라 권한 분산… 실무형 대통령이 이끄는 '집단지도체제'

조은효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8.15 18:05

수정 2017.08.15 22:05

과거와 다른 의사결정 체계
소수에 권한 집중 견제.. 文대통령 3無 회의 강조
수석비서관.보좌관 회의 선착순 자유석으로 운영
[문재인정부 출범 100일] 기능 따라 권한 분산… 실무형 대통령이 이끄는 '집단지도체제'
[문재인정부 출범 100일] 기능 따라 권한 분산… 실무형 대통령이 이끄는 '집단지도체제'


[문재인정부 출범 100일] 기능 따라 권한 분산… 실무형 대통령이 이끄는 '집단지도체제'

청와대는 단연코 최고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곳이지만 대개 그 내부는 블랙박스(암실)로 묘사돼 왔다. 암실에선 견제가 어렵다. 지난 박근혜 정권 때 국정농단 사태가 그랬다. 당시 청와대 수석비서관급 이상 다수의 인사들은 대통령과 소수의 참모 간 지시.이행에 대해 "낌새조차 몰랐다"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취임 100일을 앞두고 있는 문재인정부의 청와대는 어떤 모습일까. 청와대 수석비서관급(차관급) 이상은 1주일에 최소 15~16차례 얼굴을 맞대며 의견을 주고받는다. 이를 두고 박근혜정부 청와대 비서관 출신 한 인사는 "문재인정부 청와대 운영방식은 계선조직(수직조직)이 아닌 '기능적 조직'으로 이해해야 하며, 이 점이 전임 정부와 가장 다른 점 같다"고 말했다.
큰 그림에서 볼 때 소수에 의한 수직적 의사결정 구조가 다수에 의한 수평적 구조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기능에 따른 권한 분산

최근 기획재정부의 한 고위 공무원은 "업무를 추진하다보면 직접 상대해야 하는 청와대 내 참모진이 한 10명은 족히 넘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과거엔 경제수석을 필두로 업무 성격에 따라 소위 '왕수석'으로 불린 정책조정수석(현 정부에선 장관급 정책실장) 정도만 상대하면 됐다. 하지만 지금은 예산.재정과 관련된 일은 임종석 비서실장 산하 박종규 재정기획관을 만나야 하고, 경제정책 전반에 대한 일은 장하성 정책실장과 그 산하 반장식 일자리수석, 홍장표 경제수석, 또 그 산하 비서관(1급)을 상대해야 하며 거시정책의 큰 그림과 국민경제자문회의 운영 등은 김현철 경제보좌관과 상의하고, 부동산정책은 김수현 사회수석과 산하 비서관들에게 보고해야 한다. 그 외에도 산업.통상.기후.여성가족 비서관 등 현안에 따라 접촉해야 할 일이 많다.

이 공무원의 '동선'은 청와대가 과거 정부와 다른 의사결정 체계로 가동되고 있다는 점을 설명하는 단적인 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현재 청와대 운영시스템 중 가장 큰 흐름은 '집단지도 체제'라며, 이는 결과적으로 소수에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간혹 임종석 비서실장이나 윤건영 국정상황실장 등이 실세라고 거론되기는 하나 과거와 같이 대통령의 생각을 좌우하는 '문고리' 권력에 비할 바는 아니다. 이 관계자는 "언론에서 지적하는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내각 핵심인사들에 대한 정책결정 과정 소외론 역시 '권한의 분산'이란 새로운 프레임으로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장관이나 청와대 참모 모두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다수 중 한 명이라는 것이다. 과거 정부라면 경제부총리와 권한과 역할을 놓고 자연히 긴장 관계를 형성했을 법한 홍장표 경제수석도 현 정부에선 정책실장 산하 수석비서관 그룹의 일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대통령과 가까운 실세 부총리, 실세 장관, 실세 참모 등 '실세 딱지'가 이번엔 구조적으로 통하지 않게 하겠다는 게 문재인 대통령의 생각이란 것이다.

■3無회의 100일…좌석전쟁

청와대 집단지도 체제의 상징은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오후 2시에 열리는 문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보좌관 회의다. 취임 직후 문 대통령이 '계급장.받아쓰기.사전결론'이 없는 3무(無)를 선언했던 회의체다. 테이블 중앙의 문 대통령과 좌우 주영훈 경호실장, 임종석 비서실장,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외엔 선착순 자유석으로 운영되는데 현안이 있는 참모 외에 자발적 참석자가 늘어나면서 날이 갈수록 좌석이 부족할 지경이라는 게 청와대 참모들의 전언이다. 청와대의 한 행정관은 "비서관(1급 공무원급) 이하에겐 의결권은 없지만 발언권이 있는데, 대부분 대통령과 상사인 수석비서관 앞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한다"고 했다. 이 행정관은 "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내부에선 진짜 토론을 한다"면서 "언쟁과 격론이 오갈 정도"라고 전했다. 언쟁이 붙을 때면 임 실장과 장하성 실장에 문 대통령까지 가세해 3인이 '만담쇼'를 벌여 회의 분위기를 조절한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대화 중간에 거의 끼어들지 않고 주로 듣는 편"이라며 "대통령이 발언을 하면 토론의 흐름을 방해한다고 생각해 그런 것 같다"고 했다. 대통령의 발언 분량이 30%라면 참모진들의 발언 분량은 70%가량이라고 한다. 실제 문 대통령은 지난달 국정과제보고 때 너도나도 발언하겠다고 손을 들자 다른 참석자들에게 발언 기회를 넘긴 바 있다. 일선 부처에서 청와대로 파견된 한 공무원은 "청와대 참모진들은 대개 참여정부나 시민단체, 국회 등에서 오랜 세월 함께 일하면서 토론이나 집단적 의사결정 방식에 익숙해져 있는 것 같다"며 "나름대로 '합'을 맞춰왔다거나 내부의 '문화'로 이해해야 할 것 같다"고 봤다.

■좌장은 '실무형 대통령'

이 집단지도 체제의 좌장은 단연코 '문 대통령'이며 그가 '실무형 대통령'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는 게 복수 청와대 핵심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임 실장은 매일 오전 8시10분 수석 및 비서관들과 함께 현안점검회의를 한 뒤 곧이어 9시10분께 현안 담당자들을 모두 대동하고 문 대통령 주재 티타임 회의에 들어간다.
문 대통령이 역으로 임 실장이 주재하는 기획조정회의에 갑자기 나타나 '참관'을 청하기도 해 참모진이 화들짝 놀란 적도 있다. 참모와 대통령의 면담 자체가 수시로 이뤄지다보니 최종 결정뿐만 아니라 모든 의사결정 과정이 내부적으로 노출돼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문 대통령에게 올라가는 최종 보고서엔 말단 행정관부터 비서관, 수석비서관에 이르기까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각자의 '의견'이 달려 있다"며 "최적의 결정을 위해 의사결정의 전체 흐름도를 투명하게 보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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