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문재인정부 출범 100일] 신고리 5·6호기 ‘先중단 後대책’.. 전기료 인상 등 거센 역풍 초래

정상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8.15 17:19

수정 2017.08.15 17:19

탈원전 정책 딜레마
여론 등에 업고 밀어붙이기.. 공론화위도 논란에 휩싸여
산업부도 대응에 미온적 ..10월말 중단 여부 결정.. 60년 탈원전 로드맵 필요
[문재인정부 출범 100일] 신고리 5·6호기 ‘先중단 後대책’.. 전기료 인상 등 거센 역풍 초래

'탈원전'은 17일 출범 100일을 맞는 문재인정부 정책 중 최대 쟁점 중 하나다. 정부는 높은 지지율 속에 상당수 국민의 탈원전 여론을 근거로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탈원전은 안전하고 청정한 신재생에너지로 대전환을 위한 필수 조건이라는 게 현 정부의 기조다. 국민들은 에너지정책의 패러다임 전환 필요성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그 정책 결정 방법과 절차, 속도가 일방적·급진적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 결과 탈원전이 국가의 미래 에너지정책에 바른 방향이라는 새 정부의 명분과 실리는 임기 초 밀어붙이기식 일방통행으로 비치고 있다.
'탈원전'이라는 중요한 정책에 수반되는 정교한 정책과 소통이 부족하다는 점은 새 정부 100일을 되짚어보면 아쉬운 대목이다.

■탈원전 선언에 거센 역풍

문재인정부의 탈원전 정책 방향은 확고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월성 원전 1호기(2022년까지 수명연장) 가동도 중단시킬 수 있다. 2030년까지 (원전을) 몇 개 더 폐쇄할 수도 있다"고 했다.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일시중단 논란이 일기 시작하자 다시 한번 탈원전 쐐기를 박은 것이다. 신고리 5.6호기는 1조원 이상 투입돼 우리 독자기술(APR-1400 원자로)로 공사가 진행 중(공정률 29%)인 원전이다.

예고편은 지난 5~6월 국정기획자문위원회 논의에서다. 국정위는 당시 관계부처와 논의에서 "신고리 5.6호기 공사를 일단 중단하겠다"며 '선중단·후대책'을 발표했다. 그러자 원전을 지지하는 산업계, 학계 등에서 거세게 반발했고 국정위는 "안전성.경제성 등을 검토해 건설 중단 여부를 정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논란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탈원전을 국가 정책으로 대통령이 공식 선언한 시점이다. 취임 40일째 되는 지난 6월 19일 고리 원전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문 대통령은 "고리 1호기의 가동 영구정지는 탈핵 국가로 가는 출발이다. 신규 원전 건설계획은 전면 백지화하겠다"고 선언했다. 원전 찬성 진영의 반발은 불 보듯 뻔했지만, 원전 문제에서 정면 승부를 택한 것이다. 이로부터 한달여 후 신고리 5.6호기 건설은 일시중단됐다. 안전성과 타당성을 다시 살펴보겠다는 정부 방침에 따른 조치다. 이 과정에서 역풍은 컸다. 원전 찬성 지역민들과 원전 이해당사자들은 "새 정부의 대표적 포퓰리즘 정책"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전기료 인상 등 논란 확산

정부는 임기 초반 계획대로 강공전략을 이어갔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를 국민 여론에 맡기겠다며 공론화 방식을 제안했다. 갈등을 진정시키면서 정부의 정책 추진에 물꼬를 트겠다는 계산이다. 지난달 24일 민간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공론화위는 서둘러 출범했다. 그러나 '한시적 특수목적의 기구'로 중립성 논란이 불거졌고, 원전 에너지 전문가가 배제된 공론화위가 국가 대계를 결정하는 일이 타당한 것이냐는 등의 시비도 이어졌다. 또 공론화위에서 "(시민 배심원단들이) 신고리 5.6호기 공사 재개 여부를 결정하지 않는다"며 의사결정 과정 및 결정 주체를 놓고 정부와 엇박자를 보이며 우려를 샀다.

그럼에도 논란의 불길은 갈수록 커졌다. 원전 폐기에 따른 전기료 인상, 국가전력수급 위기, 신재생에너지 확대(전체 에너지원의 20% 비중) 정책의 실효성, 원전 기반산업 및 독자기술 위축, 해외 원전시장 진출 타격 등 탈원전이 국가 경제 위협요소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특히 '탈원전발 전기요금 상승'은 여론을 크게 자극했다. 정부 입장에선 좋지 않은 신호다. 그러나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제 역할을 못했다. 정권 교체 이후 180도 변해버린 원전 정책에 한동안 정부 차원의 대응에 미온적이었다. 정부 출범 두달이 지나서야 산업부 신임 장관이 취임했다. 백운규 장관은 취임하자마자 "탈원전으로 전기요금이 급격히 오르는 일이 없을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그러면서 "신한울 원전 1.2호기의 설계수명이 완료되는 시점이 2079년이다. 급진적인 중단이나 폐쇄는 없을 것"이라고 설득했다.

올 연말로 예정된 제8차 전력수급 기본계획(2017~2031년)도 탈원전 논란의 연장선이다. 이 계획에는 오는 2031년까지 15년간 중장기 전력수급 방안이 담기는데, 새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반영된다. 최대 전력수요 예측(7차 계획 기준 113.2GW→101.9GW) 및 적정 설비예비율 전망치(최대 22%→20%)를 하향 수정하는 쪽으로 현재 초안이 만들어지고 있다. 발전설비 예비율이 2%포인트 낮아지면 2기가와트 용량의 발전소를 덜 지어도 되고, 탈원전에 힘을 실을 수 있다.

■'에너지정책 전환' 더 소통을

앞으로 두 달여 후 폭발력이 강한 뇌관이 예고돼 있다. 신고리 5.6호기의 건설공사 중단 여부가 공론화를 거쳐 결정되는 10월 말이 그때다. '공사 중단' '공사 재개' 둘 중 하나의 결정은 또 다른 논란을 가져오고 그 후폭풍을 예측하기 어렵다.

'효율'과 '위험' 두 얼굴의 원전은 어느 나라에서나 민감한 이슈다. 새 정부가 시한폭탄과 같은 원전 이슈를 너무 일찍 건드린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그럼에도 이번 정부는 정면승부 방식을 택했고, 정책은 현재진행형이다. 정부는 원전을 서서히 줄이되 원전산업 수출 우위 유지, 원전 해체산업 육성 등 '60년 탈원전 로드맵'을 생산적으로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 또 국민에게 탈원전의 미래 경제성, 신재생에너지의 잠재력 등에 대해 정확한 정보와 비전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지난 20여년간 결론 짓지 못한 앞으로 원전 건설에 버금가는 중요한 원전 폐기물(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등) 처리 문제 등으로 건설적인 논의가 이어져야 한다.

여론을 이기는 정부는 없다.
내년 지방선거 등 다른 변수로 정부의 지지율에 영향을 받을 경우, 정부는 원전 이슈를 임기 초반 계속 끌고 갈지, 아니면 점진적.단계적인 출구 전략을 찾을 가능성도 있다.

skjung@fnnews.com 정상균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