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에너지효율 등급강화 ‘딜레마’

김경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8.14 17:15

수정 2017.08.14 17:15

[기자수첩] 에너지효율 등급강화 ‘딜레마’

국민에게 질 좋은 서비스를 하자는 정부 취지가 반쪽이 될 처지다. 정부의 에너지효율 등급 강화 말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제품 변별력을 높이고 에너지 절약을 위한 기술개발 유도를 위해 지난달 1일부터 가전품목에 대한 에너지효율 등급기준을 강화했다.

냉장고, 전기밥솥, 공기청정기, 냉온수기 등 1.2등급 비중이 과도한 4개 품목에 대해 등급기준을 이전보다 15~30% 올려잡은 것이 골자다. "너도나도 죄다 1등급이니 소비자가 어떤 제품이 더 좋은 건지 헷갈린다. 진짜 좋은 몇몇 제품만 1등급을 주겠다"는 얘기다.


이런 제도개선은 소비자 입장에서 설득력이 있다. 사실 주변에 1등급 제품이 너무 많은 게 사실이니까.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시장은 정부의 뜻대로 잘 안 움직이고, 문제는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터진다.

에너지효율 등급 강화는 몇 년 전부터 예견된 일이다. 가전업체들도 곧 재정리가 있을 것으로 알고 있었다.

이제 때가 왔다. 업체는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 얼마 전 한 가전업체 공장장은 "정부 말대로 하면 비싼 부품을 써야 한다. 이는 제품가격 상승으로 직결되는데 그래도 1등급을 맞출지, 기존 부품을 쓰고 2등급으로 내려가더라도 가격경쟁력을 지킬지 고민"이라고 했다.

최근 일부 업체는 예년보다 한달 일찍 김치냉장고 신제품을 내놨다. 이들의 마케팅 포인트는 '에너지효율 1등급' 전자(1등급 맞추기)를 선택한 것이다.

당연히 제품 가격은 올랐다. 삼성전자가 최근 선보인 김치냉장고 신제품은 지난해 동급 대비 5만~10만원가량 비싸졌다.

복잡한 꼼수를 쓰는 기업도 있다. 주력 제품의 가격은 그대로 유지하되 비주력 모델의 가격을 확 올려 전체 매출 규모를 맞추겠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가격에 덜 민감한 '눈먼 소비자'의 지갑을 노리는 전략이다.

에너지 절약 외에도 정부의 취지에는 기술개발 유도라는 좋은 명분이 있다. 그러나 "에너지효율은 연구개발(R&D)보다는 비싼(좋은) 자재를 쓰면 된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소비자 편의를 위한 것이지만 소비자가 더 현명해져야 하는 아니러니죠." 결국 좋은 취지의 제도가 나왔지만 소비자들 스스로 손해를 보고 있는 건 아닌지 한번 더 고민해야 한다. "프리미엄 가전은 원래 비싼 거죠"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쇠뿔을 바로 잡으려다 소를 죽이는 우를 범할까 걱정된다.

km@fnnews.com 김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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