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부동산일반

실수요자 잡는 '8·2대책' 곳곳서 비명

윤지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8.07 18:21

수정 2017.08.07 21:37

수천만원 떼이고 계약 해지했는데… 뒤늦게 대출 구제해줘 손해
조합원 주택 샀다 청산 대상되자 집주인에 계약취소해달라 애걸
잔금 앞두고 대출 막혀 집주인과 계약취소 실랑이.. "계약금 못돌려줘" 혼절도
정부가 '8.2 부동산대책'을 내놓은지 일주일째를 맞고 있지만 주택 수요자들은 갈수록 이번 대책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정부는 이번 8.2 부동산대책이 "집값 급등의 주범인 다주택자를 불편하게 만들고 실수요자들이 집을 소유할 수 있도록 하는 대책"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실제 주택시장에서는 다주택자보다는 실수요자들에게 더욱 규제에 시달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국토교통부 민원마당에는 정부의 대책을 성토하는 글이 폭주하고 있으며 시장에서는 이번에 갑작스런 규제로 인해 실수요자들이 규제 폭탄을 맞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애처로운 처지에 몰린 사례가 계속 들려오고 있다.

■대출 막히자 계약금 수천만원 손해보고 간신히 해지했는데

7일 부동산 중개업계에 따르면 지난 주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중개업소에서는 재건축을 앞둔 조합원주택을 산 한 40대 가장과 매도자가 계약 취소를 요구하며 큰 언쟁이 벌어졌다. 이 매수자는 얼마전 조합원 주택을 매수하기로 하고 계약금만 치른 상태에서 잔금을 오는 10월초께 주기로 약속한 상태였다. 그러나 8.2 부동산대책에서 정부가 9월 초에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 시행령을 개정할 예정이어서 이 시기를 넘기게 되면 매수자가 조합원 지위를 획득해도 현금청산 대상이 되기 때문에 계약해지를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집을 팔기로 한 매도자도 다른 곳에 집을 마련하기로 하고 계약을 치른 상황이어서 계약취소를 하게 되면 자금조달 계획이 차질을 빚어 양쪽 모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된 것이다.

서울 마포구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그나마 이들은 사정이 나은 편"이라며 "정부가 대책을 발표하자마자 대출이 줄어들게 돼 계약금 수천만원을 포기하고 계약을 취소했던 사람들도 있는데 이틀뒤에 이들을 구제하기로 하면서 자신들이 매수자한테 욕을 엄청 먹고 있다"고 말했다. 이 중개업자는 "마포 일대에서만 계약을 했다가 계약금을 떼이고 취소한 사례가 너댓건이 더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계약금 반환 놓고 집주인과 실랑이하다가 졸도하기도

지난 주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한 중개업소에서는 계약 취소를 놓고 실랑이를 하다가 자칫 인사사고까지 발생할 뻔 했다.

인근지역에 살다자녀 교육을 위해 이곳의 10년된 중소형 아파트로 이사오기 위해 매수 계약을 했던 한 부부 이야기다. 계약서를 쓰고 계약금 10%를 보낸 상황에서 갑자기 이번 대책으로 투기과열지구와 투기지역으로 동시에 묶여 대출가능액이 크게 줄어들자 자금마련이 도저히 어렵다고 판단한 부부는 집주인에게 계약해지를 요구했다. ]

그러나 집주인은 계약 해지는 가능하지만 계약금은 돌려줄 수 없다고 버텼다. 1억원이 넘는 돈을 떼일 처지에 몰린 젊은 부부는 제발 계약금을 돌려달라고 울며 하소연했지만 주인이 거부하자 그만 부인이 낙심한 나머지 졸도해 구급차까지 출동했다는 것이다.

■장기보유공제 없어져 갑자기 수억원대 양도세 낼 처지도

또 한 인터넷 카페에 올린 40대 총각의 사연도 기막히다. 자신의 아버지가 서울 강북서 40년 전 단독주택을 400만원에 사서 보유하고 있었는데 몇년전 재개발이 확정돼 인근의 아파트를 사서 이사했다고 한다. 또 최근에는 자신의 아들이 계속 선을 봐도 번번이 퇴자를 맞아 40살이 넘도록 장가를 가지 못하자 아들 명의로 조그마한 아파트 한채를 분양받았다고 한다. 어차피 재개발이 이뤄지면 이를 팔아서 아파트 구입비용에 충당할 요량이었다.

그러나 이번 대책으로 자신의 아버지는 3주택자가 돼 40년 된 재개발 아파트에서 세금만 2억원에 가깝게 내야 될 처지에 놓이게 됐다는 것이다. 아들이 결혼을 아직 못해 세대분리가 안돼서 3주택자가 될 처지에 몰렸다는 것이다.

■30대, 40대 맞벌이 가구들 "정부가 사다리 차버렸다"

서울에서 집을 마련하기 위해 착실히 돈을 모으던 젊은 30대와 40대 가장들은 "우리는 서울에서 집을 사지도 말라는 것이냐"며 하나같이 정부를 성토하고 있다. 서울 전지역이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돼 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등이 40%로 뚝 떨어져 당장 자금여력이 부족해 주택을 매입할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더구나 서울에서 분양되는 모든 신규 주택이 청약가점제로 배정돼 상대적으로 청약가점이 낮은 이들이 당첨될 확률이 거의 없어서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이미 지난 해 서울 강남 11개구의 평균 아파트 가격과 전세가는 각각 7억원과 4억원을 넘어섰고, 서울 전체 아파트 중위매매가격(4월 KB국민은행 조사 기준)도 6억원대를 기록하고 있다.


또 이들 계층이 설사 서울 강남권에서 신규 분양하는 전용85㎡이하 아파트에 당첨됐다고 해도, 대출 규제가 강화되다 보니 현금을 많이 보유하지 않은 실수요자들은 계약금→중도금→잔금까지 치를 여력이 없어 이같은 정책이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는 게 이들의 목소리다.

현재 전세로 살면서 어린 자녀 1명을 두고 있는 대기업 직장인 장모씨(38)는 "가점제 비율이 100%로 상향되서 1순위가 아닌 이상 서울에서 소형 아파트를 신규분양 받기는 어려워진 것 아니냐"면서 "현금이 부족한 실수요자가 대다수인데, 설사 강남에서 소형 아파트가 당첨됐다고 해도 현금을 끌어모으는데 허덕이다가 결국 그 물건이 미분양이 될 수 있다.
그럼 결국 돈 있는 사람한테 가지 않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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