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주영 칼럼]

김동연과 이헌재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7.31 17:25 수정 : 2017.07.31 17:25

경제를 정치로 풀려 해선 안돼..대통령이 부총리에 힘 실어줘야
철학 안 맞으면 차라리 교체를


김동연 경제부총리 흔들기가 시작된 것일까. 아직은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지만 역경이 시작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공약 재원 마련을 위한 증세 방안을 놓고 권력 내부의 핵심세력과 갈등을 빚고 있다. 김 부총리는 "올해 세제개편에 증세는 없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선언했다. 증세의 필요성에는 공감을 하지만 그 시기는 내년 이후로 늦춰도 된다는 입장이다. 당장 조세 저항도 걱정이지만 현재의 유례 드문 세수 호조가 내년에도 지속되는지 지켜볼 필요도 있다. 무엇보다 회복기 초입에 들어선 경제에 증세가 발목을 잡아서는 안된다는 생각도 하는 것 같다.

한동안은 김 부총리의 의도대로 정리가 되는 듯했다. 그러나 여당 실세들이 '슈퍼리치 증세론'을 들고 나오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초대기업과 초고소득자에게 세금을 더 물려 복지공약 재원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새로울 게 없는 주장이었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실세들 손을 들어주는 바람에 김 부총리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처음부터 예견됐던 일이다.

김 부총리의 이런 상황은 이헌재 전 부총리를 떠올리게 한다. 이 전 부총리는 김대중.노무현정부에서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장관을 두 번이나 했다. 2004년 노무현정부 때의 일이다. 청와대와 열린우리당(현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에 포진한 운동권 출신 386 실세그룹과 자주 부딪쳤다. 충돌의 발단은 부동산대책이었다. 당시에는 수도권 신도시 7곳이 거품 논란을 일으켜 버블세븐이란 말이 생겨날 정도로 집값이 폭등했다.

386 실세들은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등과 같은 급진적인 대책을 요구했다. 이 부총리는 원가 공개는 시장경제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원칙을 고수했다. 그러자 '신자유주의 신봉자' '참여정부 경제수장 부적격자' 등과 같은 거친 표현들이 나돌았다. 이 부총리를 노골적으로 비토하는 분위기도 형성됐다. 시중은행 자문료 건을 언론에 슬그머니 흘린 일도 있다. 그를 몰아내려는 시도였음이 분명했다. 이 부총리는 여기에 결연히 맞섰다. 386세대에 대해 '폭포수' 같은 비판을 토해냈다. "386세대가 경제 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들이) 시장경제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라고 받아쳤다.

노련한 정치가들은 경제에는 정치가 넘볼 수 없는 고유한 영역이 있다고 믿었다. '신자유주의 신봉자'라는 비판을 들었던 이헌재를 경제팀 수장에 앉힌 노무현 대통령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서생적 문제의식'과 함께 '장사꾼의 현실감각'을 강조했던 것도 마찬가지다. 문 대통령이 보수정권의 때가 묻은 김 부총리를 발탁한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그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 김 부총리는 여당 말고도 청와대에만 7명의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다. 정권 실세들 틈에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야 한다.

들러리나 시킬 요량이었다면 처음부터 그를 등용할 이유가 없었다. 문 대통령 주위에는 강직한 도덕성과 정의감으로 무장된 운동권 출신 경제학자들이 즐비하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을 제쳐두고 김 부총리를 선택했다. 왜? 경제는 급진 개혁보다는 점진 개혁을 택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 아닌가.

김동연과 이헌재. 충돌의 소재는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
운동권 출신이 주축이 된 정권 핵심세력의 급진개혁론과, 시장경제 틀 안에서 문제 해결을 추구하는 관료집단의 점진개혁론 사이에 갈등이 시작됐다. 이헌재는 공격형을 택했다. 그는 파이팅이 강한 사람이다. 김동연은 어떨까.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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