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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신설 중기부, 돈 쓸 생각말고 규제 풀어라

파이낸셜뉴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7.20 17:10

수정 2017.07.20 17:10

16조 써봤자 ‘피터팬’ 양산.. 제도 바꾸는 데 앞장서야
중소기업계가 숙원을 이뤘다. 국회는 20일 본회의에서 중소기업청을 중소벤처기업부로 승격하는 정부조직 개편안을 통과시켰다. 지난 대선에서 후보들은 하나같이 '중기부' 신설을 약속했다. 이 때문에 승격은 시간문제로 여겨졌다. 부 승격은 1996년 당시 산업자원부 외청으로 중기청이 신설된 지 21년 만이다. 중기는 우리나라 기업의 99%, 일자리의 88%를 차지한다.
일자리 정부를 표방하는 문재인정부가 중기를 중시하는 것은 당연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벤처의 역할도 더 커졌다. 중기부 신설은 이 같은 시대 흐름을 반영한다.

신설 부서는 처음 자리를 잡는 게 중요하다. 초대 중기부 장관엔 묵직한 인물을 앉히면 좋겠다. 그래야 힘이 실린다. 어느 조직이든 권한을 안 내놓으려 한다. 특히 중기청을 관할하던 산업통상자원부는 떨떠름한 기분일 것이다. 기술보증기금을 내준 금융위원회도 마찬가지다. 새 중기부 장관은 기존 부서에 맞서 이견을 조율할 수 있는 인물이 적격이다.

한편으론 걱정도 든다. 청을 부로 승격한다고 과연 우리나라 중소기업이 확 달라질까 싶기 때문이다. 지금도 중기 지원책은 차고 넘친다. 올해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펴는 중기 육성사업은 모두 1300개, 예산은 16조원이 넘는다. 이 돈을 18개 중앙부처, 17개 지자체가 따로 집행한다. 중구난방 지원사업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효율성을 높이는 게 중기부의 첫 임무다.

부 승격이 되레 피터팬 신드롬을 부추길 우려도 있다.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다. 중기부가 제 식구를 감싸안을수록 경쟁력은 떨어진다. 지난 5월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중기 정책자금이 오히려 수익률을 떨어뜨린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일부 중기는 정책자금의 단맛에 취해 중견.대기업으로 성장을 거부하고 내내 중기로 남고 싶어한다. 심지어 정책자금에 기대어 연명하는 좀비기업도 없지 않다.

2~3대 중소기업옴부즈만으로 6년간 활동한 김문겸 교수(숭실대 벤처중소학과)는 지난 4월 언론 인터뷰에서 "창업할 때도 돈 주고, 성장할 때도 돈 주고, 망해갈 때도 돈 주고, 언제까지 정부가 개별 기업들을 먹여살릴 거냐"고 말했다. 알알이 옳은 말이다. 개별기업을 예산으로 지원하기보다 창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게 정부의 몫이다. 구글, 페이스북은 미국 정부에서 1센트도 받지 않았다.

신설 중기부는 편하게 돈 쓸 생각부터 버려라. 16조원이 다 세금이다.
그보다는 제도를 바꾸는 데 앞장서라. 규제를 없애면 돈 한 푼 안 쓰고도 얼마든지 혁신 벤처를 키울 수 있다. 다른 부서에 창업을 가로막는 규제가 있다면 중기부가 달려가서 풀어라. 발로 뛰는 중기부가 돼야 한다.
그래야 우리도 한국판 구글, 페이스북을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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